안녕하세요. 지원씨. 세정입니다. 근래 저는 오퍼센트에서 열었던 전시 《from유령사과§스테인드글라스@스티치그룹》에 놓았던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에 빠져있어요. 몇몇 대상에 동시적으로 조금은 산만하게 관심이 가는 편이고, 그것들을 오래 두고 보며 반복적으로 왕래하며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편인 것 같아요. 아무튼 요즘은 변화하는 조형과 상태에 눈길이 갑니다. 아무래도 코로나로 인해 러프하게 계획 중이던 외부 리서치가 어려워지고 작업실 내에서의 작업이 좀 더 용이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전부터 종종 다뤄왔던 강아지 “밤세”에서 시작된 미와 추가 뒤엉킨 조형, 변형되는 신체, 그리고 증축되는 도시의 신체(권동현 작가의 작업을 숙주 삼아)를 스캐닝, 데드 마스크, 캐스팅, 다른 작가와의 협업, 좀벌레와의 협업 등의 방법으로 다루려고 하며, 언젠가 이를 한데 모아 도감으로 묶는 것을 상상하고 있어요.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집과 작업실에서 보내면서, 그리고 유독 길었던 장마로 인해 익숙했던 공간과 사물을 조금은 낯설게 경험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내려앉은 천장, 벽에 슬은 곰팡이, 옥상에 방치된 부풀은 mdf, 산책길에서 본 등이 불룩해진 옷장 같은 것. 공간과 가구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들이요. 솔직히 코로나 19로 죽을 확률이 낮은 연령대여서 그런지, 건물주가 아니어선지 모르겠지만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 형태들을 보는 것이 우습기도 했습니다. 고립과 함께 찾아온 열기와 습기는 우리의 행동을 느리게, 반면 사물의 운동을 이전보다 빠르게―둥글고 복슬복슬 부드럽게 만드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자주 눈살을 찌푸리면 미간의 주름살이 생기듯 도시의 신체 역시 쓰임새에 맞춰 변형되기도 합니다. 사용자의 개입에 대해 좀 더 오픈된 곳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말이죠. 오랜 기간 함께 작업실을 공유해 온 권동현 작가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살아오던 곳(그리고 그와 유사한 곳)에서 발견한 이러한 형태들을 기록(모각)하고 때로는 기념비화하는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저는 작업의 과정을 어깨너머로 보다가, 나중에는 답사 일정을 잡고 함께 리서치를 다니다가 대뜸 올라타, 숙주에 개입 및 변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좀벌레와의 협업”은 오랜만에 꺼낸 담요(TMI지만 할머니로부터 엄마에게, 엄마로부터 나에게 전달된)에서 발견한 좀 먹은 형태가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라 민망하지만 밤하늘의 별 같다고 생각했고, 아예 좀의 서식지로 조성해 그들의 de-knitting 작업을 기록하는 방법으로서의 협업을 의미하며, 현재 준비 중에 있는 작업입니다.
유리병에 지상이나 물가에 서식하는 여러 동식물을 사육하며 그들의 공존을 전시하고 관찰하는 비바리움(vivarium)이라는 취미 영역이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가는 대상에 따라 테라리움(terrarium), 팔루다리움(paludarium) 등으로 세분화되는데, 공통적으로 사육 대상의 생리작용과 자연 순환법칙, 대상 간의 상응 관계 등을 고려해 환경을 조성 및 유지 관리합니다. 잘 구성된 비바리움은 다른 반려 동식물 취미 영역에 비해 미세기후와 같은 훨씬 밀도 있는 환경을 케어한다는 점에서 왠지 모르게 더 전문적인 것만 같고 공존을 추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듯 보입니다.
바이오스피어(The Biosphere) 2와 같이 다른 동식물과 함께 인간도 실험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던 밀폐형 비바리움도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미국, 유럽, 러시아 등지에서 제3세계 인간을 전시했던 사례가 떠오르는데, 이와 달리 바이오스피어 2에 2년간 고립되기로 자원한 이들은 대기·토양·해양·기계·의학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과학자 8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존 앨런 John Ellan을 주축으로한 개발팀과 실험 대상자 그리고 투자자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공유하며 “지속 가능성”을 위해 화성 식민지 건설, 거주형 우주선에서의 인간 생존 연구와 관련한 이 거대하고 괴랄한 프로젝트를 고안했고, 밀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산소 부족 및 이산화탄소 급증 문제와 생태계 불균형이 초래되면서 에코 퓨쳐리즘적인(?) 본래 의도와 달리 (백인 남성에 의해 구축된) 인류세의 처참한 축약 버전을 보여주는 듯 실패로 끝이 납니다.
아무튼 저는 비바리움에 매료되어 관련 유튜버들의 영상 속 꾸물거리는 선충, 벰파이어 게등을 보며 멍을 때리다가 그들의 방법을 참조해 사물의 운동이 왕성했던 지난 여름의 온기와 습기를 구현한 비바리움을 작업실 내부에 제작하고 있어요. 지금과 마찬가지로 자발적 인 자가격리가 독려되던 2020년 여름 중부 지방의 장마 기간은 총 54일(6.24-8.16)로 역대 최장을 기록했습니다. 평균 온도 및 상대습도는 24.2℃, 82%. 집 내부에 지난 장마의 평균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춘 온실을 설치하고 있어요. 물이 반쯤 담긴 얕은 수조 안에는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자재와 사물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나름 왕성한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물들을 배치하다가 문득 바니타스 정물화가 떠올랐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중세 유럽에서의 바니타스화는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와 유관하다고 해요. 마카브르(macabre)는 부패한 시체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니타스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카브르는 죽음이 죄의 징표이던 시절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부활과 영생의 믿음을 추구하는 의의로 수도원과 공동묘지의 벽과 석관에 묘사되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있지만 바니타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은 부질없으므로 종교만이 답이라는 교훈을 목적으로 해골과 촛불, 유약한 사물과 부패한 정물을 그렸습니다. 두 양식 모두 유기체와 사물의 변성을 독립적으로 관찰하기보다는 인간사 내러티브를 위한 상징으로, 이를테면 “멈춤”, “죽음”, “무”, “헛됨” 등과 연결된 것으로 한정합니다. 혹은 그렇게 축소되어 해석되었을지도 모르죠.
오늘도 차가운 집구석이 아닌 따뜻한 카페에서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상상을 해요. 사실 저는 애초에 주로 재택 알바하는 예술가 나부랭이여서인지 이 정도의 고립은 딱히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이나 미팅을 원격으로, 줌을 통해 집에서 하는 것은 사실 너무 좋았고요. 다만 엄마네 집에 방문할 때마다 긴장되기는 했어요. 혹시나 내가 무증상 보균자면 어쩌나. 다른 가족에게 바이러스를 옮겨 그들의 직장에서 퍼져나가고 하는 상상을 하면서요. 근래의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이 위협이 되는 상황은 하우스 호러 장르의 전통적인 공 식과 닮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터나 집 같은 일상적인 공간, 그곳에서 만나는 동료나 친구, 반려인이 되려 위협이 되는 이야기. 하우스 호러 영화에 대한 메타적 접근을 극대화한 ⟨무서운집(2015)⟩처럼,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존재가 지긋지긋하게 자꾸 출몰한다면 구윤희 님처럼 귀신과 격투를 벌이다가 함께 춤을 추고 종국에는 일체화되는 수를 선택할 수도 있겠죠.
권세정
uncover-reality.com ↗
@we_will_always_be_back ↗
단일하지 않은 감정과 조형에 눈길이 가며, 예외적인 상태를 미적 언어로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