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Gene in World Wide Web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으로 시작되는 단 하나의 주소가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그 곳에 방문할 수 있다. 이동과 접촉이 제한된 작금의 재난 상황에서 웹은 미술 전시의 유일한 돌파구처럼 보인다. 사실 재난 이전에도 웹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 전시장 역할을 해왔다. 이미 많은 아티스트들은 인스타그램instagram, 텀블러tumblr, 플리커flickr와 같은 이미지 플랫폼에 자신의 작품 이미지를 게재하고 그것을 마치 포트폴리오처럼 사용하기도 하며 셔터스톡shutterstock, 게티 이미지getty image를 통해 자신이 촬영한 이미지 데이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미술 관련 계정 피드의 이미지들은 실제로 전시장을 방문하여 보지 않고도 그것을 실제로 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이미지를 본 사람들은 게제된 이미지 아래에 간단하게 자신의 의견까지 남길 수 있으니 이곳은 활발한 미술 교류의 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웹 공간이 전시의 공간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방문자의 입장에서 전시가 개최되는 물리적인 방space을 떠올려본다. 금요일 오후 전시장을 방문하러 갈 때 타고 가는 273버스, 그 곳에 막 도착했을 때 마주치는 커다란 전시 포스터, 전시장 안에서 맡게 되는 어떤 냄새, 리셉션 데스크 위에 올려진 A4용지와 A5사이즈의 유광 리플렛, 가장 큰 벽 중앙에 작가의 의도에 맞게 걸린 200호의 캔버스, 관람자의 동선에 맞추어 적절하게 배치된 휴먼 스케일의 조각. 방문자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전시된 작품에 다가갔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혹은 자유롭게 전시장을 활보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지만 방문자들은 이 섬세한 호스트가 설계해놓은 물리적인 공간과 계획된 통제 안에서 움직인다. 마침내 호스트가 의도한 방향대로 방문자의 머릿 속에는 전시장의 인상이 몇 컷의 이미지로 남는다.
웹 공간에서 개최되는 전시를 상상해보자. 새벽 2시. 여전히 잠이 오질 않아 머리 맡에 있는 아이폰11의 화면을 켠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확인하는데 한 전시가 웹에서 열린다는 게시글이 보인다. 엄지 손가락으로 아래에 www로 시작되는 주소를 누른다. 구글 크롬을 통해 새로운 화면으로 전환된다. 우측 메뉴 바에서 원하는 항목을 누른다. 다시 화면이 전환. 방문자는 200그람도 채 안되는 세로 150.9mm, 가로 75.7mm크기의 기기를 들고 위에서 아래, 혹은 좌에서 우로 손가락을 쓸며 창window을 본다. 그 곳에서 방문자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경험했을까. 첨언하자면 이 꾸며낸 이야기는 아이폰 11을 사용하며, 최신으로 업데이트된 구글 크롬을 기본 인터넷 설정으로 해둔, 불면증에 시달리는 방문자로 한정된다. 만약 또 다른 방문자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경로로 동일한 주소를 방문한다면 이 전시는 또 다른 이미지로 방문자의 머릿 속에 남을 것이다.
아마도 웹에 있어서만큼은 방문자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접속하느냐에 따라, 방문자가 경험하는 작품의 사이즈와 해상도, 작품의 정보값, 관객 경험 총체의 폭은 매우 클 것 같다. 동일한 주소로 접속했지만 방문자의 환경에 따라 방문자 각자의 머릿 속에 남는 이미지가 다른 것이다. 나는 섬세한 호스트로서 이곳의 방문자에게 물리적인 방space에서 경험했던 이미지를 웹에서도 동일하게 제공할 수 있을까. 호스트는 자신이 의도한 방향대로 방문자에게 닿기 위해 웹 공간에서 개최되는 전시장으로서 방space을 최선을 다해 설계하겠지만 동시에 허둥대는 꼴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양한 변수가 늘 존재한다면 이 변수를 이용하는 우회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때론 불가항력에 맞서기 보다 그것을 이용하는 전략을 세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호스트는 전시장 위에 물리적으로 구현한 적이 있던 사진 이미지 데이터 더미를 볼 수 있는 웹 페이지 위로 방문자들을 초대한다. 이미지 전체를 조망하며 미끄러지듯 유영했던 이전의 부드러운 경험은 잠시 잊고 각자가 가진 창window을 통해 호스트와 함께 허우적대는 경험을 하길 바라며, 화면 위로 불쑥 튀어나오는 크고 작은 사이즈의 이미지 표면을 위 아래로 훑어보는 대신 각자가 가진 디지털 기기를 뷰파인더viewfinder삼아 정사각형 픽셀 위를 다각도로 배회해보길 바라며.
안초롱
안초롱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이다.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변환이 가능한 사진 매체의 유연함과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사진을 임의의 법칙에 따라 공간에 구현하는 방식, 물리적으로 신체를 획득한 사진 이미지가 관객에게 번역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최근 개인전 ⟪Natural Gene⟫(취미가, 2020)을 개최하고 동명의 사진집 『Natural Gene』을 함께 출간하였으며 주요 참여 전시로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2019),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HONEY and TIP⟫(아카이브봄, 2017)이 있다.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 ⟪더 스크랩⟫(2016-2019)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으며 사진협업체 압축과 팽창(CO/EX)의 멤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