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m, Cream Orange
송민정, 〈CREAM, CREAM ORANGE〉, HD video, 3min 48sec, 2017
Q 상영작인 〈CREAM, CREAM ORANGE〉는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코스메틱이나 패션 브랜드의 화려한 애드 캠페인을 연상시키는 글로시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팔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만 과잉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업의 룩을 만들 때 특별히 고려했던 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S 〈CREAM, CREAM ORANGE〉는 뷰티 광고 이미지를 작품의 기본 언어로 사용한다. 글로시하고 블링블링한 장치들 사이로 곧장 물이 튈 것 같은 피부와 흠잡을 데 없이 리프팅 된 얼굴을 목적지 삼는 뷰티 광고들은 과장된 톤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장담한다. 하지만 뷰티 광고가 제시하는 목적지는 대체로 출력되지 않는 세계에 가깝다. 매끈하게 블러 처리된 모델의 피부처럼 가상의 목적지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광고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 작업은 이와 같은 광고가 백화점과 타임라인을 오가며 제시되는 상황을 떠올리며 시작했다. 단호하고 결백한 뉘앙스의 이미지가 화장품코너에 빼곡하게 놓여있는 장면이나, 뉴스 기사 위로 싸우듯 배치된 배너 광고가 어떻게 나의 현재와 링크되는지 지켜보고 그것을 레퍼런스 삼았다. 〈CREAM, CREAM ORANGE〉가 크림의 질감, 반짝이는 사물 등 장식적이고 멜랑콜리한 요소를 통해 세일링하는 것은 현재 상태나 기분에 대한 감각이다. 뚜껑이 열린 화장품의 냄새처럼 코끝에 스치듯 가볍게 무드를 전환한다. 마치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 같은 이 작업이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의 기분이다.
Q 내레이션이 단발적으로 등장하는 텍스트 또한 구체적인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영상 전반의 분위기 혹은 작업이 조성하는 ‘기분’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계음으로 흘러나오는 영문 내레이션이나 이를 번역 투에 가까운 문체로 옮겨놓은 자막, 그리고 감정을 표현한다기보다 그냥 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행복’이나 ‘멜랑콜리’ 같은 단어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로써 영상과 이를 보는 사람이 피상적인 메시지나 이미지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그리고 그 정도로 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다. 작업에 등장하는 언어가 이처럼 피상적이거나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한 이유가 있을까? 상영작 외에도 다른 영상 작업에서 일본어나 불어와 같은 다른 외국어를 도입하기도 하는데 그 선택에 관해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S 자신의 한 계정을 꾸준하고 상세하게 서술해나가도록 이끄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프로세스를 활용해 자신을 하나의 캐릭터로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 때문에 작업은 주로 셀럽, 감독, 점주의 역할을 그럴싸하게 흉내 내며 다소 유령 같은 행색으로 타임라인 위를 떠도는 이미지가 된다. 가상의 인물을 매개로 환경을 설정하고 이를 타임라인으로 링크시키는 방식을 통해 현재 상태와 설정(일종의 소설) 사이에 형성되는 이상하고 깊은 관계에 주목하며 기믹을 다루어 왔다. 혼합된 언어 사용은 무드에 기여함과 동시에 현재 상태로부터 거리감을 확보하고, 막연한 장소로의 심리적 이동을 가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번역 투와 보이스오버를 활용한 음성 해설은 일상적인 경험을 약간 부정확하게 만든다. 가끔 외국 채널이나 기사에서 문장을 발췌해 구글 번역기에 돌려보거나 거기에서 인상적인 문장이나 표현법을 찾아 복붙(복사 붙여넣기)의 방법으로 문장을 재조합해나가기도 한다. 이 이질감이 자국어로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모호한 기분을 더 구체적으로 설득해낸다고 생각한다.
Q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비율의 영상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혜경의 〈명왕성〉 뮤직비디오도 그렇다. 〈DOUBLE DEEP HOT SUGAR - the Romance of Story〉의 경우에는 비율은 그렇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화면이 등장한다. 이렇게 작업에 여성의 셀프 카메라 이미지 혹은 그 이미지가 SNS상에서 떠도는 상태를 상기하는 프레임을 도입한 배경에 대해서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S 〈DOUBLE DEEP HOT SUGAR –the Romance of Story-〉에서 사적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거부 혹은 부인하기 위해 셀프 카메라를 이모지와 짤방 사이에 듬성듬성 배치하고, 이를 일종의 짤방으로 은유했다면 〈CREAM, CREAM ORANGE〉나 〈명왕성〉 뮤직비디오에서는 모델에게 구체적인 무드를 투영시키는 방식으로 셀프 카메라를 사용해왔다. 두 영상의 모델인 ‘교환학생’은 교환학생, 봉준호, 최영 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음악, 사진 기반의 작업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활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SNS 계정에 끊임없이 셀프 카메라를 업로드 한다. 교환학생의 셀프카메라는 대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웃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셀피가 갖는 대상화 방식에서 어긋나는 포지셔닝을 통해 대상화에 대한 함의를 비틀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고 자신의 욕망을 전시하거나 세일링 하려는 욕구가 해방감을 주기도 했다. SNS 계정은 더이상 한 사람의 일상을 전시하기 위한 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서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고 이와 같은 개인주의적 세계에서는 어떤 전문성 없이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 〈CREAM, CREAM ORANGE〉나 〈명왕성〉 뮤직비디오에서는 교환학생이라는 모델을 인스타 셀럽에 투사하거나 유사 셀럽의 위치로 이끄는 척하는 도구로 셀프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Q 〈CREAM, CREAM ORANGE〉와 신해경의 〈명왕성〉 뮤직비디오에 동일한 모델이 등장하는데 전자에서는 글로시하고 화려한 세팅에서, 후자에서는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일상적인 장면에 놓여있다. 일부러 동일한 배우와 작업을 하셨는지, 같은 배우를 이렇게 전혀 다른 세팅에 놓고 촬영하시면서 특별히 고려했던 지점이 있었을까?
S 질문의 내용과 같이 두 작업에서는 교환학생이라는 모델을 반전된 무드로 연출하고 있다. 〈CREAM, CREAM ORANGE〉에서는 광고 모델의 위치에, 신해경의 〈명왕성〉 뮤직비디오에서는 일상적인 장면에 모델을 두고 셀프카메라라는 소재로 두 작업을 느슨하게 연결했다. 한 명의 모델을 통해 캐릭터에 낙차를 부여하고 몇 가지 장치로 이 둘을 다시 연결했을 때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모델이 각각의 장소에서 반전된 무드를 보여준 것인지 혹은 애초에 두 작업에서 분리된 자아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 이 모호한 링크를 통해 여러 갈래의 상상이 일어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