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 구멍
신혜남, 〈배꼽-구멍〉, HD video, 11min 51sec, 2018
Q 신작 〈배꼽-구멍〉(2018)은 작년에 졸업 전시에서 보여주신 〈나는 이렇게 잠이 든다〉(설치 및 영상, 3min 18sec, 2017)와 연장선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잠이 든다〉는 거울을 보며 메이크업을 하는 영상, 메이크업을 한 채로 잠이 들어 자국이 난 베개커버, 흐트러진 침대, 거울 등으로 구성된 설치 작업이었다. 〈배꼽-구멍〉은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 중 교묘하게 성애화된 배꼽을 다루었는데, 여성의 신체와 이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 혹은 강박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과 작가 본인의 신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연속성이 보였다. 이 두 작업을 아우르거나 달라진 맥락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다.
S 두 작업 모두 본인이 받아들인 외부를 반영하고 여성에게 부과되는 이미지에 대한 불편함을 본인의 몸을 통해 드러내는 공통점이 있지만, 외부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반응하는 방식의 형식적인 면과 태도에서 상이한 지점들이 있는 듯하다. 우선 형식적 측면에서 이전의 작업이 물질적 증거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의 조합이 환기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면, 새 작업에서는 실재(실제로 등장하는 신체) 또한 매개된 이미지들과 병치하여 이미지가 담고 있는 대상화의 방식을 재전유해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현이 가지는 논리에서 미끄러지는 거부의 제스쳐와 그들의 기준에 부합하고자는 듯한 행위들을 동시에 담아 양가적인 태도를 드러낸 것이 이전과 달라진 맥락인 듯하다. 입장의 차이와 함께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 매체 또한 자연스럽게 변했다.
Q 〈배꼽-구멍〉은 얼마 전에 있었던 전시(〈우연한 만남을 이용한 소탕가능성〉 @미스테이크 뮤지엄, 2018.4.22-5.5)에서 보여준 다채널 영상 및 설치 작업을 단채널 비디오로 편집한 작업이다. 그 전시에는 어떻게 나누어 설치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단채널로 편집하면서 어떤 부분을 고민이 있었나? 편집할 때 특별히 중점으로 삼은 지점이 있었나?
S 당시 설치에서는 각각의 퍼포먼스 영상들이 개별 모니터에서 재생되게 구성되었다. 영상 이외에도 사진과 텍스트 작업이 다른 곳에 배치되었고, 늘어놓기의 방식을 통해 관객들이 각각의 퍼포먼스 영상들과 파운드 푸티지로 이루어진 영상과의 관계를 조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설치의 중점이었다. 공간 안에서 영상의 성격에 따라 영상이 상영되는 물질적인 조건 또한 다르게 구성하고자 했다. 파운드 푸티지 영상의 경우 모니터가 아닌 프로젝터를 사용했고 퍼포먼스 영상들은 아날로그 모니터와 LCD 모니터 등 물질성이 확실히 보이는 것들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전체에 성가와 같은 사운드가 재생되고 파운드 푸티지는 원형으로 크롭되어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이 벽면 위에 설치해 전반적인 성당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했다. 당시엔 공간을 전반적으로 활용하고 물질의 차이를 활용하여 각 단위의 조합을 통해 작업이 도출될 수 있도록 고려했다. 단채널로 편집하면서 설치 환경 또는 공간이 가질 수 있었던 느슨한 여러 조합의 가능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Q 〈배꼽-구멍〉의 초반에 우윳빛 액체 위로 배꼽이 나오다가 들어가고, 또 그 위에 덩어리진 핏빛 액체가 떨어지는 연출된 장면이 나오고, 점점 클로즈업됩니다. 그리고 영상의 중간에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배꼽들이 원형 프레임에 들어오는데, 나중에는 배꼽 관리 루틴 끝에 학대된 배꼽이 그 원 안에 들어오는데요. 이렇게 배꼽을 보여주는 방식을 연출하고, 클로즈업해서 아주 크게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어떤 효과를 내고 싶었을지 궁금합니다.
S 재현에 저항하지만 그 태도는 애매하여 결국 그 영향력에서 멀리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다 할까. 그러나 클로즈업은 실물의 크기를 자유롭게 재단할 수 있는 이미지의 가공에 대한 단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배꼽 주변을 제거하고 클로즈업을 했을 때도 매끈한 심상을 유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모든 살결과 그 떨림들을 실물보다 크게 보여줌으로써 일반적 시각 경험보다 많은 시각 정보를 제공하고자 했다. 미처 확인해오지 않았던 것까지 크고 자세하게 보여준다면 기존의 안정적인 크기와 거리 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미지의 매끄러움에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Q 영상의 중반부터 후반까지 본인이 자신의 배꼽과 그 주위를 직접 관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행동들은 어떻게 설정하게 되었나? 배꼽의 (재현된) 이미지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직접 관리하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나?
S 재현된 이미지에서는 관리의 과정은 생략되고 완료된 것들만이 보인다. 애초에 모두 매끈하고 완벽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밀하게 진행되는 것이 권장되는 과정들을 노출해서 기대하고 있던 매끈한 이미지와의 간극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이미지들에 근접해지기 위한 노력의 과정들은 이미지를 비꼬지만 동시에 소유하지 못함에 대한 박탈감을 스스로 인정하는 제스쳐들일 수 있다. 스스로 배꼽을 관리하는 행위 속에서 미묘한 비꼼을 통해 개인의 저항이 미미한 영역에서 이루어짐과 모순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Q 이후의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S 〈배꼽-구멍〉에서 제 신체를 이용한 수행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이미지와 개별적인 실제가 맺는 관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제 작업이 본인의 조건을 반추하는 것에서 주로 시작되었고 시각 경험을 통한 외부와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 보고자 하는 것인데 이미지에 대한 것을 다루면서 그 방식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본래의 것에서 떨어져나와 이미지가 되는 과정과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어떤 힘을 가지게 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미묘하게 틈입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여성에 관련된 이미지뿐 아니라 다른 여러 층위들을 가지는 것 또한 다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