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코 1-100
최윤, 〈하나코 1-100〉, 슬라이드쇼, 14min 12sec, 2018. ©최윤
Q 2015년에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에서 본인의 셀프카메라 이미지에 ‘하나코’라는 이름을 붙이고 프레임에 넣은 작품 50개-〈하나코 50〉(디지털 프린트, 사진액자, 알루미늄 판, 2015)-를 판매했다. 이미지에 반사광을 표시하는 등의 제스쳐와 함께 ‘하나코’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 이미지를 본인이 아닌 다른 존재로 이행시킨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몇 년간 찍어온 셀프 카메라 이미지 혹은 셀프 카메라를 찍는 행위가 작업의 발단이 되었던 이유나 계기가 있다면?
S 핸드폰에 카메라가 장착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성행하면서 셀프 카메라를 찍는 행위와 셀카를 온라인상에 올리는 일이 점차 대중적인 문화로 정착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특히 셀카를 잘 찍어서 프로필 사진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고 나서, 타임라인에서 흘러가는 나의 셀카들, 친구의 셀카들을 마주할 때마다 계속해서 내가 알던 사람과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놀랄 때가 있었다. 셀카 특유의 각도와 거리감이 풍기는 아우라는 내가 평소에 접할 수 있는 나 또는 남의 모습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프로필 셀카가 쌓이면 독립된 앨범에서 한꺼번에 모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계정이 하나가 아니어서 본인이 설정한 콘셉트로 프로필과 게시물을 채우기도 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서 프로필 셀카를 엄청 많이 올려 프로필 사진 앨범이 수만 장의 셀카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정작 짙어지고 기억되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흐려지고 잊히는 것은 무엇이겠냐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하나코’ 작업의 시초였다.
셀카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언젠가부터 자연스러워져 버린 집단의 심리와 행동(특히 공공영역의 시각 문화와 관련해서)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Q ‘하나코’는 본인의 셀프 카메라 이미지에서 출발하지만 빛 반사 효과나 프레임과 같은 요소를 통해 특수성이 두드러지기보다 상투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느낌을 준다. 이런 효과는 구체적인 이미지나 습관에서 시작하지만 “집단의 심리와 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작업의 방향성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 이미지가 자기 자신으로 머물지 않고 다른 이름이 붙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S 작업에서 특수성과 상투성을 교차시키는 걸 즐겨한다. ‘하나코’라는 이름은 기본적으로 소설가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에서 익명성의 상징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동명이인의 작가라는 점과 ‘하나코’는 개념이 잘 맞았기에 그 이름을 사용했다. ‘하나코’가 작업에서 처음 등장한 〈하나코 50〉은 미술의 판매 플랫폼, 판매 과정, 판매자와 구매자 그리고, 구매자와 미술품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여 나온 작업이다. 미술품에서 가장 안 팔리는 항목인 인물 사진을 택했고, 누구든 집 안에 있을 법한, 사봤을 법한 사진 액자와 결합했다. 그리고 액자에 보통 끼워져 있는 유리 효과를 내는 속지와 익명의 모델 사진을 떠올렸다. 액자의 속지를 친숙한 인물 사진으로 덮거나 갈아 끼우는 그 일련의 과정이 한 사진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오래 대하느냐에 따라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나코 50〉을 ‘가상-인물-사진-액자’라고 홍보했다. 셀카가 ‘누군가의 사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남에 의해 찍힌 사진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사진이라는 점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나’에서 ‘남으로, ‘남’에서 ‘나’로, 수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시점의 이동이 필요했다. 사진 속 인물과 시선을 교환하고, 말을 건네며 대화하는 등의 태도를 상상했다. 셀카를 찍을 땐 보통 카메라에 눈을 적나라하게 마주치게 된다. 그럼 그렇게 찍힌 사진 속 인물은 사진 앞에 놓인 누군가를 빤히 응시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코 50〉을 만들 때 ‘하나코’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 뒤집어 놓을 수 있도록 고려한 점도 그런 이유이다.
Q 셀프카메라라는 관습화된 행위와 이미지의 작동원리를 주목한 점이 흥미롭다. 《굿-즈》 이후에도 하나코가 곳곳에서 등장했었다. 2017년 《하나코, 윤윤최, 최윤 개인전》(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7)에서는 〈하나코 100〉(아크릴 거치대, 아크릴판, 코팅지에 출력, 각각 120x80x3cm, 2017)이 아크릴 거치대에 행렬을 맞추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전시에서 보여준 〈하나코와 김치오빠 외 연속재생〉(3채널 비디오와 사운드, 30min, 2017)에서도 인터벌로 보이는 부분에 하나코의 이미지들이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하나코가 이동하고 다른 시공간에 옮겨오고 붙을 때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점이 있었나?
S 나는 전시에 접근할 때 많은 경우 링크에 링크를 타고 이전 전시에서 어떤 요소를 떼어내어 가지고 와 상황에 맞게 변형시키곤 한다. 〈하나코 50〉의 경우도 ‘산수문화’에서 열린 2인전 《비연경룡 제비가 날고 용이 놀라다》(산수문화, 2016)에서 설치 일부로 넌지시 던져 놓기도 했다. 〈하나코 100〉은 내가 더는 가지고 있지 않고 누군가의 공간에 있을 ‘하나코 1번’부터 ‘하나코 50번’까지, 그리고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코 51번’부터 ‘하나코 100번’까지의 그림자들이다. 따라서 액자의 앞면을 이미지로 만들어 ‘하나코’ 이미지와 합치고, 이를 얇은 종이에 인쇄하고, 기존 액자의 두께만큼 복사하여 겹쳐 놓은 후, 검정 아크릴판으로 덮어놓았다. 전시에서는 〈하나코 100〉이 설치된 공간을 ‘윤윤최’의 공간, ‘미디어 캐시 저장소’와 같은 곳으로 설정하여 ‘하나코’ 이미지뿐만 아니라 ‘미디어 캐시’라고 칭한 ‘하나코의 도구’들도 가져다 놓았다. 증폭하여 얇아진 ‘하나코’와 ‘하나코의 그림자들’이 도구와 함께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일종의 저장소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그리고 〈하나코와 김치오빠 외 연속재생〉에서는 영상 속 퍼포먼스에 함께했던 ‘하나코’를 등장시켰다. 〈사랑: 하나코 안고 구르기〉(비디오, 3분 27초, 2016)에서 안고 다리를 굴렀던 금발 머리 ‘하나코 46번’, 그리고 〈하나코와 김치오빠〉(비디오, 1분, 2016)에 등장하는 공간에 세워 두었던 ‘하나코 10번’, ‘하나코 35번’, ‘하나코 47번’이 나온다. 전체 영상은 3채널로 다시 제작했는데 관람자가 영상에 둘러싸여 ‘하나코’의 움직임을 다각도로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코 46번’이 빙글빙글 돌 때 영상에서 ‘하나코 46번’의 이미지도 같이 돈다. ‘김치’와 ‘오빠’를 부르던 목소리가 고조되면 행동을 하던 사람 얼굴의 이목구비는 뿌옇게 되고, ‘하나코 10번’, ‘하나코 35번’, ‘하나코 47번’의 크기가 뚜렷이 커진다. 계속 등장하여 이상한 행동을 하고, 동양인 여성으로 보이는 이 영상 속 인물이 ‘최윤’인지 ‘하나코’인지 ‘김치오빠’인지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하나코 50〉 영상의 내레이션에서처럼 ‘하나코’는 누구든 될 수 있고, 어디든 있는 존재이기에 ‘하나코’를 이름으로 규정하지 않되, 공통된 행동들의 일으킴을 통하여 ‘하나코’가 형성되는데 주력했다.
Q 방금 언급한 행동에 함께 하는 하나코는 ‘초단발활동’에서 보여주신 〈WWY〉(비디오, 1분 52초, 2015), 〈공항장애〉(비디오, 1분 11초, 2015)와 같은 영상에서 작가 본인이 셀카를 찍는 행위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때 셀카봉과 오방기와 같은 소재들과 더불어 빙글빙글 돈다든지 혀를 내민다든지 하는 행위가 이루어진다. 이제는 더 이상 특수한 행위라기보다 많이들 습관처럼 하는 셀카 찍는 행위를 퍼포먼스로 다루면서 어떤 지점을 드러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C 〈하나코 50〉을 만든 이후에 이 ‘하나코’들에게 몸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팔을 쭉 내밀어서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며 사진 찍는 행위에 주목하게 되었다. 충분히 잘 나오는 셀카를 찍기엔 사람 팔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팔을 연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셀카봉과 셀카봉 끝에 매달린 핸드폰 액정을 통해 보이는 얼굴. 이 둘이 짝을 이루어 몸에서 싹튼 또 다른 몸이 만들어진다고 보고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했다. 기초적인 움직임으로는 두 팔을 뻗어 ‘하나코’ 액자를 들고 마치 액자 아래로 몸이 있는 것처럼 함께 걷기나, 셀카봉에 연결된 핸드폰에 가발을 씌우고 마주 보는 등의 행동이 있다. 더 나아가 셀카 찍기에서 각도가 중요하듯, ‘하나코’의 행동에는 방향이 중요했다. 연장된 팔, 팔 끝에 달린 눈과 두뇌(사진 찍는 행위로서의 기억 저장)를 얻게 된 ‘하나코’는 기존의 방향감각을 변이시키기에 유용했다. 따라서 방향을 가리키는 오방기와 모든 방향을 향하여 돌도 도는 원운동이 퍼포먼스에 반복하여 등장한다.
〈하나코와 김치오빠 외 연속재생〉에 나오는 동작과 행동은 서로 고리를 이루며 전개된다. 영상에서 ‘하나코’는 여러 도시의 시공간을 이동하며 도구로 연장된 신체가 또 다른 도구와 신체로 변화를 거듭한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여러 방향으로 나를 향하여 찍던 셀카는 저곳에서 카메라의 방향이 밖을 향해 전환되어 찍히다가, 다른 저곳에서 사진을 찍듯 소리를 내지르고, 다시 저곳에서 소리를 지르듯 몸을 부딪친다. 이러한 과정이 쌓여, 셀카에서 확장된 ‘하나코’, 셀카에서 반사된 ‘하나코’, 셀카에서 숨겨진 ‘하나코’ 등 여러 지역에 걸쳐 사는 각기 다른 ‘하나코’들이 나타나 보이고 만날 수 있다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