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ALOGUED (2016)

〈CATALOGUED〉(2016)의 퍼포먼스

밈 미 우

http://mememiu.co.kr


DOER/ PROFESSIONAL HERBIVORES Loving mayonnaize, skin, soft stuff, nature and night Like singign in the rain, swimming naked, lying down anywhere (giggle)(dance)(laugh)


현전성과 ‘Situation structure’

Q    〈(Not) Your Typical Narcissist〉(2018) 스크리닝에 와서 일련의 작가들을 ‘여성 작가’로 조명하고 이들의 작업에서 보이는 ‘여성성’을 다루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셨던 것이 기억난다. 질문을 해주셨던 만큼 밈미우 작가도 그러한 문제의식이 있을 것 같아서 지난 작업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2015-16년도 작업, 특히 설치/퍼포먼스 작업이었던 〈CATALOGUED〉(2016)의 경우 ‘베이퍼웨이브’를 활용한 전략으로 주로 독해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보니 여러 지점에서 오는 시선을 조직하는 방식이나 작가 자신의 몸에 자아를 덧입히는 방식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도판1

〈CATALOGUED〉(2016)의 퍼포먼스


M    베이퍼웨이브를 다룰 때도 사실은 그 특유의 공간성에 집중했다. 작업에서 현전성을 중요시한다. 가령 〈CATALOGUED〉에서 등장한 공항, 쇼핑몰, 좌대 등의 배경이 베이퍼웨이브적인 무공간성을 지니기를 원했다.

Q    “베이프웨어적인 무공간성”은 어떤 의미인지?

M    설정한 공간들이 상징적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전 자체의 공간으로 느끼기를 원했다. 퍼포먼스는 1:1로 예약을 받아 진행했고, 나머지 관객은 들어와서 복면을 쓰거나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정했다. 예약한 관객은 카트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가는 길에 캠코더가 설치되어 있어서 영상 안에 삽입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나와 예약한 관객이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팔로우하면서 이동하도록 했기 때문에 복합적인 시점들이 있었다. 퍼포머로서는 〈홀리 모터스〉, 〈도그빌〉과 같은 영화도 참조했다. 당시에는 특정 경향이나 단어들로만 해석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 내가 하고자 했던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Q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727NOW!에서 강재원 작가와 함께한 설치이자 퍼포먼스인 〈#1~7〉(2015)에서는 소형 풀과 프린트물로 수영장을 연출했고, 직접 수영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CATALOGUED〉에서는 특정 공간들을 연출했던 접근이 〈#1~7〉부터 보이는 것 같은데.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관객들의 시선을 조직하고 관계를 맺도록 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도판2

〈#1~7〉(2015)의 퍼포먼스


M    “장치-구조체”라는 말을 쓰곤 한다. 작업에서 연출된 공간 전체가 일종의 장치였는데 많이들 그 안에 있는 각 이미지를 읽어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았다. 내가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장치-구조체를 통해 상황적 특성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현전성을 중요시하고 미니멀리즘을 좋아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Q    장치-구조체란? 보여준 구조체의 맵이 경험의 즉흥성을 헤치는 정도의 구속력을 지니는 것 같지는 않다. 플로어플랜이나 기계의 부속물 각각을 알려주는 설명서처럼 보인달까. 앞서 ‘현전성’이 중요하다고 하셨고 이 구조체가 ‘상황적’이라는 점을 드러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일어날 일과 구조체의 설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도판3

〈#1~7〉(2015)의 ‘situation structure’ 맵


도판4

〈CATALOGUED〉(2016)의 ‘situation structure’ 맵



M    사실 “장치-구조체”라는 말보다 “situation structure” 쪽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장치라는 말이 아무래도 내가 목표하고 있는 상황적인 측면과는 다른 뉘앙스를 주는 것 같아서 더 괜찮은 말이 없나 하다가 만들어 낸 말이다. 구조체는 하나의 스크립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나 연극의 무대장치에도 스토리를 위한 맵이 있지 않나. 현전성과 분화되는 상황을 모두 조율하기 위한 커다란 틀 정도일 수도. 사실 상황 안에 많은 시선이나 관찰자를 두려면 상황적 레이어를 제대로 쌓아야 한다. 따라서 스크립트가 없으면 행위와 구조를 조율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기존의 퍼포먼스의 경우 행위자와 관찰자의 시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의 퍼포먼스는 행위를 하는 자- 보는 자의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내가 진행하는 많은 작업들은 상황과 상황을 덧대거나, 관람자나 퍼포먼스의 역할을 흐리게 해서 모호한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굿-즈⟫(2015)에서 시도했던 도슨트로서의 퍼포먼스도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사람 역시 퍼포머가 되면서 누가 관람자인지 모호한 상황을 설정했고, 전시장이라는 상황적인 구조 위에 다시 상황을 쌓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나는 작업 속에서 개별적인 여러 개의 현전성이 있기를 바란다. 기존의 퍼포먼스가 하나의 움직임이나 행위를 보고 거기서 해석을 하고 체화해나가는 과정이었다면, situation structure 안에서는 퍼포머, 설치물, 비디오, 관람자 모두 동일한 위계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점으로 설정해놓아 각자가 다른 경험을 체화해나간다. 어떻게 해도 동일한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한 작업이다. 〈CATALOGUED〉의 구조 안에서도 2층에 올라가서 분화된 행위를 지켜볼 수 는 있지만, 정확히 카트에 탄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복면을 쓴 관람자는 어떤 체험을 했는지 지켜볼 수가 없다. 개별적인 현전성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situation structure라고 생각한다.

Q    이제까지 했던 작업 중 〈#1~7〉, 〈CATALOGUED〉, 〈CATALOGUED-MEMEC〉 등의 맵을 살펴보면 때때로 작가와 관객 뿐만 아니라 모니터 같은 구조물까지 등장 인물로 설정하기도 한다. 이로써 작업에서 설치나 퍼포먼스의 요소들이 퍼포머(=작가)와 관객들 모두와 동등한 위상에서 다뤄진다는 점으로도 보인다. 작가이자 퍼포머가 특정한 장치를 점유한다는 의미보다 작가이자 퍼포머 스스로도 하나의 장치가 되는 걸 생각했던걸까?

M    내가 장치로 작동한다기보다는 각 요소가 하나의 점으로 작동하길 바랬다. 기능하는 것, 수행하는 것, 그리고 체화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 그 안에서 각각의 관람자가 경험하고 체화하는 서로 다른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사실 요즘은 어떤 구조나 담론이 형성 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딱 나눠서 말할 수 없지만, 기존의 담론들은 피라미드 형식이었다면 지금 나오는 많은 현상들이나 담론들은 평행적이고 선택적이다. 심지어 서사적인 구성도 없다. 나는 이걸 ‘하이퍼링크적 서사’라고 부르는데, 작업 안에서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마디로 개별적인 구조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들, 웹이 보여주는 공간적 특성을 가져오고 싶었던 것 같기도하다. 웹이라는 공간이야 말로 위계없이 하이퍼링크 서사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니까.


그리고 비디오나 시선들은 퍼포머와 관람자를 지워주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 또 누가 보고있는가가 행위를 완성시켜주는 것이라는 생각해서 〈CATALOGUED〉자체에는 사람들 모두를 촬영하는 장치를 도입했다. 정체성과 정체성 사이에 있는 중립지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고 그런 정체성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 같기도하다. 보통은 몰입하는 행위를 하는데 나는 오히려 분열시키는 담론을 만들어놓고 진행하는걸 즐기는 것 같다. 〈CATALOGUED〉에서는 퍼포머와 관람자 사이의 중립지대라던가, 관람자와 카트를 예약한 예약자 사이의 중립지대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체화된 분열: 퍼포머 밈미우, 브랜드 밈미우

Q    작업에서 스스로 퍼포머로 등장한다. 자신의 몸이 전시되는 데에 따른 고민은 없었는지?

M    오히려 그걸 즐기는 편이다. 예전부터 내가 몸을 써서 어떤 작업을 했을 때 반응이 오면 좋다. 〈CATALOGUED〉에서도 탈의하고 살색 수영복만 입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관객들을 당혹시키는 것이 오히려 재밌다. 나 스스로를 실험체로 쓴다. 별도의 자아가 있어서 스스로를 쳐다보기도 한다.

Q    〈CATALOGUED〉에서 단 한 명의 관객 외에 나머지에게 복면을 씌운 게 혹시 그런 즐거움과 관련된 것이었을까. 그 관객들은 거의 강제로 관음하는 입장이 된다. 퍼포먼스 보러 왔다가 이상한 사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웃기려고 한 의도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M    맞다. 진지하긴 하지만 웃기려고 한 거다. 예전에 방 전체에 전지를 붙이고 ‘미우야 사랑해’를 써넣은 작업을 했다. 그리고는 나를 꽁꽁 묶어서 두었는데 다들 엄청 좋아했다. 그런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다. 예전에 거울에다가 키스하는 작업도 했다. 알고보니 패티 챙(Patty Chang)의 ⟨Fountain⟩과 비슷했다. 패티 챙도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한다는 것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지금 볼 때는 오히려 그 상징성을 전복시킴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코드를 잘 이용하는 것도 현명하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Q    작년부터는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신다고 들었다. 공연은 이전의 situation structure를 통해 구현한 것과 어떻게 다른가?



도판5

공연 현장


M    현전성에 집중하다가 이렇게 오게 됐다. 판화를 전공했지만 결국 입체 작업으로 넘어와 공간을 다루게 된 것도 경험하고 체화되는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입체 언어를 사용해도 보는 사람들은 평면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음악은 직관적이고 즉각적으로 공간을 채워버린다. 그래서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지금도 공연을 계속 하고 싶다. 뮤직비디오를 통해서 여성성을 다루고 싶기도 하고. 공연에서는 빔프로젝터를 사용하여 일종의 미디어 파사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구조적이고 남성적인 언어보다 체화하는 언어에 관심이 있다. 더 직관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 ‘밈미우’라는 캐릭터를 더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Q    작업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공연이나 미술 작업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

M    음악 작업 할 때 ‘에이블톤(Ableton)’을 통해 가상 악기를 사용하는데, 주슬아 작가가 네모 색면을 올린 회화 작업과 시각적으로 비슷한 화면을 보게 된다. UX/UI 상에서 놀 수 있다면 체감상 음악과 미술이 비슷하다. 아는 베이시스트는 ‘모양이 예쁜 방식으로 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스코어를 완벽하게 가시화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역을 분화하기보다 같이 융합되는 지점을 찾아내면 좋을 것 같다. 여러 현장들이 결합된다면 더 멋있는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푸에르자 부르타가 하는 공연처럼 새로운 방향의 무언가를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Q    곧 브랜드도 런칭한다고 들었다. 가방을 만들고 계시다고.

M    원래 하던 방식의 작업을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레이어를 매스(mass)로 만드는 방식을 생각하면서 가방을 만들었다. 또한 직관적인 이미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도판6

MEME MIU의 ‘TOTEM’ 중 ‘AMMONITE BAG’

Q    그렇다면 최근의 선택은 이전 활동으로부터 단절되었다기보다 원래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M    그렇다. 최근에 브랜드와 밈미우가 움직이는 situation structure를 만들었다. 밈미우가 만드는 가방을 ‘totem’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팔고 사는 행위 그 자체를 어떤 상황으로 만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사이트 자체를 공간으로 가정하고 진행해보려고 한다. 더 극적으로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일이라 흥미로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미디어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해오면서 실제로 기술과 관련된 여러 궁금증이 있다. 가령 핸드폰 사용이 우리의 뇌 구조를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알고 싶다든가. 미디어가 발달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작업의 형식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에 많은 관심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플랫폼이나 전시 방식을 시도해 보고싶다. 그게 콘텐츠가 될 수도 브랜드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Q    가방을 만들면서 집중했던 부분이 있다면?

M    일단 가방의 모토는 “your second skin”이다. 어떻게 신체에 친화적인 가방이 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Q    모토만 들어보면 속옷일 것 같은데 가방이라니 재미있다.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나?

M    자본이 없으면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걸 많이 느낀다. 그 사이를 줄타기하고 있다.

Q    작가로서 활동하는 것과 브랜드 사이의 구분이 있는 것인지?

M    구분은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스스로를 “DOER”라고도 써두었다.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직업은 밈미우이고, 밈미우가 밈미우할 뿐. 작년에는 연기 모임도 했었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모여서 즉흥연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어를 써서 그 상황을 연기하고 대사를 연습한다든지. 재미있었다.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걸 좋아한다.

Q    에너지가 많으시다.

M    이것저것 많이 한다. 사실 그것도 고민이긴 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오니까. 처음에는 음악하는 친구들도 걱정을 하면서 스스로를 작가로 포지셔닝하는 게 맞지 않냐고들 조언을 해주었었다.

Q    물론 변주와 이탈은 있겠지만 활동의 핵심적인 줄기는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CATALOGUED〉 이후에 그와 비슷하게 구조체를 짜서 퍼포먼스를 하고 잠정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을 변주해가며 탐구할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실천적인 차원에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것 같다. 이전의 작업에서 계정을 운영한다거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시적으로 송출하면서 보여줬던 분화된 정체성이 이제는 아예 미우 씨 자체로 옮겨온 것 같다. 어쩌면 계정이 분화된 상황이 낯설지 않고 현실이 되어버린 현 시점의 체험이 반영된 것도 같다.

M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런 캐릭터들이 쌓이게 될 것 같다. 나는 캐릭터를 만들 때 완벽하게 몰입하지 않거나 못한다. 데이터베이스를 융합하는 방식이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무언가 한 가지를 했을텐데. 한참 나중에 활동을 모아보면 마치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중에는 나 자체가 플랫폼이 되고 싶다. 작가이고 음악가이고, 프로덕션의 경험도 있고.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다보니 나중에는 나 자신이 아이콘이 되기보다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경험과 언어의 위계

Q    작업 전반에서 ‘여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읽힌다. 〈내가 사는 피부〉(2014)를 비롯한 예전 작업을 보면 인체 모형, 피부, 라텍스, 스타킹 같은 소재들을 사용했다. 더불어 이러한 조형물을 야외에 설치하면서 일종의 연극적인 요소가 투입되기도 한다.

M    사실 부끄러워서 잘 보여주지 않는 작업 이미지다. 그때는 자기위안적인 작업이 많았다. 사랑에 관심이 많았고 가장 행복한 경험을 재현해내는 형식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에는 보다 남성적이고 조롱하고 풍자적인 언어를 배운 것 같다. 가령 커먼센터에서 했던 ⟪오토세이브: 끝난 것처럼 보일 때⟫(@커먼센터, 2015)에서 했던 〈Code 0.0 : SUPER RICH KIDS〉는 더 풍자적이고, 더 웃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포스트인터넷 맥락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어적인 요소를 더 내려놓고 싶은 단계이다.

Q    이전 작업과 그에 얽힌 고민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데. 사용한 소재나 외피, 형태 등이 한편으로는 상징적으로 쉽게 읽히기도 한다. 신체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페미니즘 작업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M    클리셰이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테제가 당시의 기조였다. 물론 이제는 이 말도 예전과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지만 그 말을 정말 믿었기 때문에 가장 내밀한 것을 까발리고, 그걸 본 사람들이 놀라는 걸 보고 좋아했다. 더 공공연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언어는 그때 구사하던 것보다는 더 다듬어졌다고 본다. 그때는 직설적이고 직관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Q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많이 쓰이는 문구라 그런지 정확히 어떤 맥락인지 더 이야기해줄 수 있을지? 이제는 그 말이 오히려 더 많은 숙제를 주는 느낌이다. 일정 부분 유효한 말인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더 밀어붙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구체적인 내용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M    동의한다. 내가 말하는 ‘개인적인 것’은 언어적인 경계에 가깝다. 다시 말해 각자가 자신의 모양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다. 월경, 첫 섹스 등의 이야기는 어쩌면 개인적인 게 아니라 형식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 특정한 경험 자체가 아니라 계속 자기 인식을 하는 상태가 개인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과정 중에 언어를 사용하면 계급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아서 불편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러한 형식적 위계를 미술에서 강하게 느껴질 때 불편하다. 어쨌든 자기를 인식하는 상태에 대해서 계속 말하는 것이 ‘레이어’와 같은 특정한 요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다. 삶을 체화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하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지원 씨도 비슷한 고민이 있을 것 같다.

Q    글 자체가 지시적이고 평가적이기보다 어떻게 수행적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왔다. 대화나 허구적인 요소들을 도입해보기도 했고. 하지만 색다른 형식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가령 어떤 작업이 나를 헤매게 한다면 덩달아 헤매는 글을 보여주면서 작업과 나란히 갈 수 있는 글쓰기가 나름의 수행(performance)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한 때는 해석으로 바로 넘어가기보다 집요하게 묘사하는 상태에 가능한 오래 머무는 훈련 같은 것도 스스로 했다. 하지만 주로 개념어를 사용하여 현 상황을 스캐닝하거나 평가하는 종류의 글에 대한 반응이 훨씬 좋다. 그런 글도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쓴다. 하지만 수행의 시도에 비해서 분석적이고 평가적인 글을 ‘본격적’인 비평으로 보는 경향은 분명히 있다.

M    미술계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다보니 성급하게 상징적인 함의를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흐름을 구조적으로 정리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게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언어들은 시간을 두고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게 기존의 언어가 아닐 경우에는 더욱더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언어들이 어떻게 융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다.

Q    아까 현전성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가령 〈#1~7〉에서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서 ‘셀럽’이 유통되는 방식을 가져왔다. 굳이 셀럽이 아니더라도 ‘나’의 계정을 분화시켜서 운용하는 방식에 잘 동기화된 제스처를 보여준 것 같다. 그런데 앞서 몇 차례 언급한 현전성은 네트워크의 매개성과는 반대극부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해하기로 현전성은 언어 혹은 텍스트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혹은 직관적이고 몰입되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면 밈미우 작가의 구조체에서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요소는 어떻게 만나는가?

M    나에게 이 두 가지는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고민이긴 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미니멀리즘 작업 안에서의 현전성은 메타포적인 것이다. 공간과 관람자와 인스톨레이션이 맺는 1:1:1의 관계에서 몰입된 현전성을 체험한다. 하지만 나의 작업의 경우는 더 구체화되고 개별화된 경험적인 행위이다. 〈CATALOGUED〉만 생각해도 관람자마다 관람할 수 있는 경험이 다 달랐다. 이 경험적인 행위를 위해 구조적인 틀이 존재하는 것이다. 개개인은 다른 몰입을 하고 있지만 그 상황 자체는 아주 분열적이다.

Q    아마 ‘현전성’이라고 했을 때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헷갈렸던 것 같다. 들어보니 밈미우가 말하는 현전성은 각자의 몰입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그것은 여러 장치를 매개항으로 삼아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situation structure에서도 그렇고, 작업이 여러 층위의 분열을 담보하도록 설계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는 이유나 이를 통해 성취하려는 효과는 무엇일까?

M    아마 이런 분열적인 구조는 ‘여성’이라는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어있다. 여자다운 여자, 혹은 그저 여성을 수행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런 이중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예전에는 충분히 여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컴플렉스가 있었고 나약해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어떨 때는 사랑을 받고 싶고 예쁜 여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보편화 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지우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따라서 자신을 지키고자하는 마음을 가질 때는 남성에 비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수 밖에 없다. 나는 동시에 마초적이면서 페미닌하다. 이러한 분열은 벗어나고 싶은 것인 동시에 내가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브랜드를 새로 만든 건 중립적인 지대를 만들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립지대를 미술계 내부에 머물지 않고 대중에게 전략적으로 다가가고 싶다. 여성들은 주로 선택을 받게 되는 위치에 처하다보니 계속 갈등한다. 남자처럼 성장했지만 다 커서 보니 남자가 되는 전략이 오히려 손해보는 행동 같이 보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융합의 단계에 온 것 같다. 싫어했던 여성적인 면까지 수용하려고 한다.

Q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태도와 이미지에 대해서 이러한 분열을 겪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명확하기보다 꼬여있는 결론이 도출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고. 너무 다양한 압박이 사방에서 들어오지 않나. 특히 성취 지향적 여성들이 어릴 때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중성으로 인식되기를 희망하다가 그래도 극복되지 않는 부조리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나이가 되면 성취보다 사랑받는 여자가 되라는 압박이 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여성들이 취하는 선택과 태도를 다양하게 조명하는 게 필요하겠다.

M    내 언어도 때때로 마초적이다. 친구들에게 종종 여자 느와르 영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여성이 여성을 넘어서는 일은 가장 남성적인 언어를 구사하는데 있다고 가끔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에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사실 결국 모성애나 사랑같이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요소들을 가지고 껍데기만 씌운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 틀을 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그런데 왜인지 여자들이 많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가능하지 않을가 싶기도하다. 이미 정형화되는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사진 특유의 색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섹시한 거 말고 갈 때까지 가는, 아주 폭력적인 것도 만들어 보고 싶다. 굳이 폭력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수행하는 역할을 비꼬는 무언가들을 만들고 싶다.

Q    꼭 만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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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 밈미우의 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