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1에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생애 두 번째로 내가 단독으로 작성하며 공적인 지면에 실리게 될 페미니즘 관련 원고다. 불과 생애 두 번째 만에 나는 ‘페미니즘 글쓰기’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즘 글쓰기는 여성학 관련 전공자나 여성주의 활동가가 아니라면 필자에게는 기회가 아니라 리스크다. 페미니즘 원고를 쓰는 것은 마이크를 쥐는 게 아니라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넘겨받는 일이며, 따라서 개인의 명예나 사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 사실상은 연대를 목적으로 한다. 어떤 프로젝트에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원고를 싣는 것은 해당 프로젝트가 다루는 내용의 층위를 분화해 책임을 분산시키고 얼마간 그 부담을 나누어 갖겠다는 의미다. 이 정도 전제에서 출발해 내가 취하고 있던 태도는 무엇이었는가를 우선 반성한다. 폭탄을 넘겨받은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된 부분은 솔직히 말하자면 폭탄을 터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FGM(Female Genital Mutilation, 여성 할례)의 실상을 고발하는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오프라인에서 ‘난민 혐오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여성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데 여성 퀴어의 인권이 현실에서 지켜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발언이 퀴어 혐오로 논란이 되고, 여성주의 활동을 열심히 하던 여성이 ‘노선 논란’에 지쳐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삭제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나는 이 모든 일들이 악의적인 의도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나는 이를 ‘페미니스트 여성의 발언이 쉽게 혐오 발언으로 오인되는 사례’로 기회가 닿는 대로 언급할 예정이다) 나에게는 점차 방어기제와 우회적인 화법이 누적되었다. 불필요한 논란이나 법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 나의 개인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발언을 삼갈 것. 여기서 ‘여성주의적인 입장’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린다. 전말이 전도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페미니즘 글쓰기를 통해 연대의 목적을 달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여성이 발언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는 소명으로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에 대해, 사실상 최근 가장 논쟁적인 이슈 중 하나인 탈코르셋과 여성성 논란에 대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이 글을 쓴다.

김주현의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은 뷰티 산업의 자본주의 논리와 가부장제 사회의 이성 중심주의 미학 사이에서 여성들이 외모 꾸미기를 강요받는 동시에 여성미에 대한 멸시가 지속되어 온 긴 여성혐오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미를 신체미로 규정하고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억압하고 가꿀 것을 강요해왔지만, 동시에 신체미를 열등한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남성 쾌락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이중적 미적 경멸’을 가한다. 저자는 여성에게 부과되어 온 외모 꾸미기 압력에 비해 이를 미학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학술 연구가 부재했음을 지적하며 여성주의적인 입장에서 모색한 외모 꾸미기의 미학적 대안을 제시하고,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미적 주체로서 능동적인 외모 꾸미기를 통해 ‘미적 액티비즘’을 실천할 것을 주장한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외모 꾸미기의 미학은 미적 금욕주의, 나르시시즘, 그로테스크의 반미학으로, 순차적으로 미적 금욕주의와 나르시시즘의 한계를 지적하고 최종적인 선택지로 제안하는 것이 그로테스크의 반미학이다.

모든 텍스트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다양한 의제가 빠른 속도로 교체되는 페미니즘 텍스트의 경우 그 글이 쓰인 시기의 특정적인 상황을 민감하게 고려하며 독해해야 할 것이다. 2009년에 발간된 이 책은 2018년의 관점에서 읽기에는 구태의연한 지점이 많은 텍스트다. 저자의 눈에 비친 2000년대의 페미니즘 지형은 포스트페미니즘이 “문화적 트렌드인 양” 유행하고, 팝아티스트를 표방하는 낸시 랭이 “비키니 차림으로 관객을 향해 오일을 발라 달라는 등 애교를 떨”며 주가를 올리는 시대였던 모양이다. 2018년의 오늘, 낸시 랭은 전남편의 폭언, 폭행 및 감금 가해 사실을 토로하며 이혼 절차를 밟게 된 이유를 언론에 고백했다.2 2세대 페미니즘의 급진적인 투쟁은 더 이상 필요치 않으며, 여성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었다고 믿던 포스트페미니즘의 환상도 잠시, 전 세계로 확산된 #MeToo 운동과 더불어 2010년대의 페미니즘은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들이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현실을 드러냈다.

책에서 제시하는 세 가지의 외모 꾸미기 대안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오늘’의 상황을 먼저 조금 길게 서술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웹하드 카르텔” 이슈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논란이 되고 있다. 불법 촬영물을 유포해 유통수익을 얻는 웹하드 업체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불법 영상을 삭제하는 필터링 업체의 실소유주가 동일하며, 이를 진보계열 남성 정치인들이 방조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3 여성의 이미지가 남성 개개인의 성적 쾌락을 위한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 자본이 되어 기업이 공모하고 국가 권력이 이를 방조하는 구조로 이어지는 끔찍한 남성 중심 카르텔의 일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다. 한편, 2018년 12월 현재 텀블벅에서는 «탈코일기» 단행본 프로젝트가 마감을 20여 일 앞둔 상태에서 후원금 1억 5천여만 원을 달성하고 있다.4 만화 «탈코일기»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 도수리, 김뱀희, 백로아는 각각 오래전에 탈코르셋을 했거나, 현재 진행 중이거나, 또는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며 탈코르셋을 완강히 거부하는 인물들이다. 만화는 탈코르셋을 둘러싼 여성들의 다층적인 서사를 다루며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을 하게 되는 이유와 탈코르셋 운동이 받는 비난, 탈코르셋을 시도하는 여성들이 경험하는 고민을 묘사한다.

이 글에서는 책에서와는 반대의 순서인 그로테스크의 반미학, 나르시시즘, 미적 금욕주의 순으로 저자가 제시한 외모 꾸미기 미학의 대안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그로테스크의 반미학은 가부장제의 추악함을 전유하며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해체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저자는 가부장제 안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이 가부장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여성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질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대신 ‘여성적 숭고’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남성적 숭고’가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남성적 주체의 이성과 도덕으로 통제해 불쾌에서 쾌로 전이되는 과정인 반면, ‘여성적 숭고’는 주체와 타자를 분리하지 않고 “타자와의 통합을 통해 주체인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를 변경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여성적 숭고를 실현하는 존재가 바로 ‘비체(abject)’다. 저자는 그로테스크 반미학의 예시로 현실의 사례가 아닌 한스 벨머나 신디 셔먼과 같은 예술 작품을 예로 드는데, 이러한 예술 작품과 일상적 실천 사이의 괴리를 무마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부연된다. “그로테스크 미학을 일상의 외모 꾸미기 미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상상력 넘치는 새로운 고안책이 필요하다.” 상상력 넘치는 새로운 고안책이란 무엇인가?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은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저자는 반복해서 더 많은 상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상상력’이라는 추상적인 대책은 예술 영역에서 실험되는 반미학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여성주의 실천 간의 괴리를 방증하는 듯하다. 그로테스크의 반미학이 구현할 수 있는 불쾌감은 구체적일지도 모르나, 그것이 가부장제를 변경하는 실질적인 정치적 수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여전히 모호하다.

현재 한국 페미니즘 지형에서는 ‘비체’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이현재는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2016)에서 비체의 사례로 잡년행진과 칼럼니스트 은하선을 언급한다. “잡년들은 남성이 ‘되고 싶은 욕망’을 과잉으로 전시하는 동시에 되고 싶은 욕망을 벗어난다. (…) 섹스와 쾌락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방식 역시 잡년되기 혹은 비천하게 되기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적인 섹스』에서 은하선은 스스로 쾌락의 향유자가 되는 방식을 택한다. 그녀는 색을 밝힘으로써 스스로를 비천한 여자의 대열에 위치시키지만, 이 비천함으로 인해 수동적 대상성을 넘어선다.” 잡년행진은 2011년에 시작되었고, 『이기적 섹스』는 2015년에 출간되었으므로 2010년대 페미니즘 리부트의 초기적 시도로서 그 의의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여자를 보고 불쾌와 공포를 느끼기에는, 기업과 국가의 공모 속에서 불법 촬영물을 유통하고 수익을 얻는 가해자이자, 피해 여성의 돈까지 갈취하는 남성들이 조장하는 불쾌감과 공포가 너무나 압도적이다. 불과 야한 옷을 입고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여성이 “비천”해지고 공포와 불쾌감을 유발하며 이를 통해 가부장제의 질서를 교란하는 ‘비체’가 된다는 것은 오늘의 시점에서는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다. 여성이 관음적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 자체로 돈이 되는 세상에서 야한 옷을 입고 섹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비체’가 될 수 있다면 가부장제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닐까. 국가와 거대 자본이 결탁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상품으로, 시체로 몰아넣는 남성 권력과 비교했을 때 그 논리를 체현하여 저항하고자 하는 ‘비체’ 여성들이 택하는 전략은 다소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음으로 두 번째로 제시된 대안인 나르시시즘을 살펴보자. 나르시시즘 미학은 가부장제가 규정한 여성의 미를 수용해 이를 오히려 과시함으로써 가부장제와 남성성 미학을 전복하고자 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하는데, 도취적 나르시시즘과 저항적 나르시시즘이 있다. 저항적 나르시시즘은 위에 언급한 그로테스크의 반미학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고,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도취적 나르시시즘이다. 저자가 포스트페미니즘의 역행(backlash)적 측면을 지적하며 도취적 나르시시즘의 위험성을 비판하는 부분은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저자는 페미니즘 예술가를 표방하는 낸시 랭과 애희 작업의 백래시적 요소를 지적하며,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여성성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 전복적인 행위로 기능하기보다는 남성 쾌락을 위해 소비되며 가부장제의 논리에 용해될 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도취적 나르시시즘과 저항적 나르시시즘의 경계가 사실상 모호하다는 점에서 가부장제의 여성미를 전유하려는 시도들이 역행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저항의 행위로 오독될 위험성은 여전히 있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탈코르셋 이슈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적 금욕주의 미학에 대한 논의를 검토해보자. 미적 금욕주의 역시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신체미에 대한 경멸에 맞서 자신의 신체를 최소화하거나 소멸시키는 금욕주의이며, 두 번째는 대상화, 타자화에 저항하기 위해 외모 꾸미기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다. 위의 두 시도가 미적 금욕주의라는 동일한 범주로 묶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성 신체를 억압하는 금욕주의의 사례로 드는 것은 14세기의 거식 수녀들이다. 거식 수녀들은 더러운 여성의 육체를 최소화하고 정신적 존재가 되기 위해 매일 한 스푼의 허브만을 먹는 단식을 감행했다고 한다. 사실상 여성 학대와 다름없는 이 사례가 왜 자발적으로 꾸밈 행위를 중단하는 페미니스트 여성들과 ‘미적 금욕주의’라는 하나의 범주에 등치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오늘날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여성들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되찾을 것을 독려한다. 얼마 전 국내 한 화장품 회사에서는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여성 암 환자를 위한 메이크업 클래스를 운영해 논란이 되었다. 남성 암 환자들은 자신의 외모에 개의치 않고 치료에만 집중해도 괜찮은 반면, 왜 여성 암 환자에게만 ‘암 환자를 위한 메이크업’이 필요한가? 여성 암 환자를 위한 메이크업은 화장으로 만들어진 여성 신체미의 오류를 방증한다. ‘주체적 외모 꾸미기’로 여성의 신체가 발현될 때, 이 신체는 기능적인 측면을 강화해 건강한 생존을 도모하는 바탕이 아니라, 치료 중인 암 환자 여성에게도 아름다워질 것을 요구할 정도로 특정 성별에게만 강요되는 족쇄에 가깝다. 또한 남성들이 “노브라와 털 난 다리”를 하고 다닌다고 해서 “미적으로 금욕적이시네요”라는 말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여성이 외모 꾸미기 행위를 중단할 때에만 미적 욕망을 거세당한 것으로 간주되는가? 그 정도로 여성들에게 미적 욕망은 생득적인 요소인가? 저자는 더 나아가 외모 꾸미기를 중단한 페미니스트들이 ‘남성화’된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저자 스스로도 ‘여성적/남성적’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의미를 가지며 다소 부적절하고 성급하게 사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성급하게 정의된 ‘남성화’라는 용어는 그것이 왜 ‘남성화’인지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 채로 ‘남성화=친가부장주의’라는 더욱 성급한 등식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탈코르셋 운동 역시 이와 같은 비난과 조롱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여성미에 저항하는 전략으로서 탈코르셋을 뛰어넘는 구체적인 실천 방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극단적인 투쟁 방식인 줄로만 알았던 외모 꾸미기의 전면적인 중단이 2010년대의 한국 여성들에게 뜨거운 공감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2010년대의 한국 사회는 포스트페미니즘의 허상적 풍요마저도 사라진, 여성의 기본적인 생존과 안전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원시적인 여성혐오로 가득 찬 사회다. 여성 이미지는 단순히(?) 외모 품평과 성희롱을 당하는 수준을 넘어, 일반인 여성의 사진을 성적인 이미지로 조작해 신상정보와 함께 온라인상에 유포하는 ‘지인 합성’ 등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불법으로 판매 및 유통되는 일은 예사이고, 이제는 이 범죄적 구조에 대기업과 국가가 공모해있다는 현실을 맞닥뜨려야 한다. 소아 성도착증적인 콘셉트를 취하는 여성 아이돌 산업이 끊임없이 팽창하고,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학생이_겪는_코르셋 해시태그 운동으로 여자 청소년에게도 무리한 다이어트와 화장이 강요되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코르셋은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하고 명쾌한 대안이다. 여성 착취적인 뷰티 산업을 보이콧하고 아랫세대 여성들에게 대물림되는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탈코일기»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해방의 미학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의 꾸밈에 대한 미학적 차원의 언어가 필요하다면 예술과 이론에 기반하는 추상적인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동시대의 페미니즘 현상을 연구의 주요 소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이 여성 해방을 위한 실천을 목표로 한다면, 그 논의는 언제나 당대의 사회 현실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추상적 담론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젊은 세대 페미니스트와 기성세대 페미니스트 간의 갈등은 그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 기성세대 페미니스트가 이제까지 담론을 전개해 온 포스트페미니즘이라는 토대는 오늘날의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는 허상에 불과하다. 여성을 죽이지 말라, 때리지 말라는 논의를 수년째 반복해왔지만 여전히 생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외모 꾸미기를 “일상의 정치적 행위”로 삼기에는, 한국 사회가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너무 많이 주입해왔다. 거울 앞에서 다양한 꾸밈 행위를 수행하며 내 얼굴에 덧씌운 정체성으로 정치적인 발화를 시도하기에는, 여성들은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숱하게 직면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해야 하는 말,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어 보인다.

페미니스트 여성 여러분, 가능한 한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능한 한 화장을 하지 말고, 가능한 한 패션, 뷰티, 화장 등 외모 꾸미기에 들어가는 비용 일체를 줄입시다. 여성을 억압해 온 뷰티 산업에 더 이상 돈과 시간을 쓰지 말고, 여성을 성적 대상, 재생산 도구,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남성 권력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의 발언력과 힘을 키우고, 길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칩시다.


  1. 1    [편집자 주] 이 글은 “(Not) Your Typical Narcissis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편집자가 선정한 책 『외모 꾸미기 미학과 페미니즘』(김주현 저, 책세상, 2009)에 대한 청탁 서평이다. 2018년 12월에 작성되었다. 

  2. 2    [단독] 낸시랭, 입 열다 “폭행, 여성으로서 참기 어렵다…이혼” (양측 인터뷰), 이데일리, 2018.10.11” 

  3. 3    ‘웹하드 카르텔’에 정부 의혹 제기한 국회의원들, 여성신문, 2018/12/12 

  4. 4    [그들이 말하는 탈코르셋, «탈코일기» 단행본]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