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 ‘나다움’ 같은 느끼한 말을 피하고 싶을 때 ‘디폴트’라는 단어를 대신 쓰기 시작했다. ‘본래’, ‘원래’와 같은 부사를 쓸 때마다 슬쩍 밟는 바람에 목숨을 날리고 마는 트랩을 스스로 깔아놓는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는데, 대신 이 외래어를 쓰면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다. 임의로 설정된 한 지점을 지시할 뿐이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 언제든 편의에 따라 벗어나도 괜찮을 테니. 아니, 어차피 디폴트 값이라는 것은 벗어나라고 있는 것이니까. 관건은 자동으로 할당된 설정값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사실 디폴트 값이라는 것은 기기를 한참을 사용하다가 불가피하게 포맷했을 때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것이라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아, 이것이 디폴트인가, 하는 순간은 이미 일이 터진 이후일 것이다. 마치 어떤 ‘자연스러움’을 의심하게 되거나 ‘본래 이랬나’하는 의문이 들었다면 이미 낭패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꼬여버린 것처럼.

주어진 태스크는 한 크리에이터의 유튜브 콘텐츠의 B컷을 훔쳐 오는 것, 태스크 명은 ‘디폴트’. 유튜브 영상 촬영은 기본적으로 폐쇄적인 작업이다. 기업체가 되어 움직이는 계정이 아닌 이상, 그러니까 구독자 수가 1,000여 명 정도인 ‘NARAS’와 같은 크리에이터는 세트 정비, 카메라 설치, 촬영, 편집 등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한다. 촬영 현장에서 그는 모니터로 자신의 모습을 시시각각 확인하며, 촬영과 동시에 자신에게 피드백한다. 콘텐츠의 완성도를 판단할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이에 맞추어 각 파트를 모니터링하는 것도, 피드백을 반영하여 대사와 목소리 톤, 그리고 제스처를 미세 조정하는 것도 모두 단 한 사람이 한다. 이와 같이 자폐적인 회로가 바로 유튜브 콘텐츠의 ‘디폴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콘텐츠에서는 이를 의식하기 어렵다.

유튜브 콘텐츠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리얼함’이다. 크리에이터는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연예인도 아이돌도 아닌 ‘일반인’의 위치에서 구독자와 교감한다. (연예인/아이돌이 유튜브 콘텐츠 시장에 뛰어드는 경우 크리에이터로서의 ‘겸손함’ 혹은 ‘진정성’ 테스트를 통과함으로써 자신의 활동이 ‘브이라이브’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스스로를 관리하는 제스처는 거부감을 부른다. 바로 이 지점에서 NARAS의 B컷은 영원히 비공개로 남는 편이 좋았을 것이고, 이를 훔쳐 오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다. 미공개 컷 전반은 그 자체로 자기 검열의 현장이다. 반복해서 뱉어보지만 어쩐지 입에 붙지 않고 겉도는 멘트는 발화자를 배신하고야 만다. 가령 가발을 쓰되 자연스러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하는 부분은 (가발을 자연스럽게? ‘진짜’ 머리카락인 애교머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스킬을 발휘할 것!) 몇 번이나 꼬이고 만다. 가발이 너무 길어서 자신의 키가 너무 작아 보인다는 말도 수차례 반복해본다. (적당한 자기 비하는 친근감을 상승시키지만 정도를 지나치면 거부감이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한다.) 대사가 아니라 대화하다가 나온 말인 것처럼 꾸미려던 시도들이 결국 실패하고 마는 순간들. 조정된 리얼함을 보고 싶을 뿐, 크리에이터가 폐쇄 회로 속에 갇혀 스스로에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하는 과정은 꽤 부담스럽다. 누군가 거울을 보고 있는데 그사이에 끼어드는 느낌이랄까. 본래의 설정값은 역시 모르는 편이 나았을 테지만, 나는 그저 약간의 미안한 마음과 함께 맡겨진 태스크를 완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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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텍스트는 김효재 작가의 프로모션 형태의 전시 〈디폴트Default〉(2018.12.19-29)의 청탁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