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affidavit] Audrey Wollen, “Looking at Photographs of Marilyn Monroe Reading” (February 25, 2019) / 번역: 유지원 / 교열: 권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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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에드워드 크로넨웨스, 〈로스앤젤레스 경계 근처에서 LA 전화번호부를 읽고 있는 마릴린 먼로〉, 1948.

마릴린 먼로가 벗고 있는 사진보다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더 많다. 그리고 그가 책을 읽는 사진은 거의 언제나 ‘명랑한 마릴린이 책을 읽다니, 믿을 수 있나요?’라는 온정주의적인 메시지가 따라붙는다. “책은 소품이 아니랍니다!” “악명 높은 금발이긴 하지만…” 대중은 애써 놀라지 않은 척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 먼로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에 언제나 놀라는 듯하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부정적인 진술에는 그것이 긍정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섹시하면서도 지적일 수 있다고 소리치는 인스타그램 포스트는 예외 없이 바로 그 주장을 더욱 못 미덥게 만들고 만다.

아름다움은 지성보다 증명하기가 훨씬 쉽다. 마릴린 먼로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 시시한 나열형 기사에 흥미를 더하거나 더 발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넘어서 그 자체로 뉴스 속보를 장식하는 와중에 마릴린의 누드는 한때는 그의 커리어를 위협했을지라도 이제는 정착되어 끝도 없이 익숙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지 6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이제는 상식이 된 먼로의 독서가 왜 스캔들이 되어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1999년에 크리스티 경매는 400권에 가까운 마릴린의 개인 소장 도서를 경매에 부쳤다. 프루스트에서 헤밍웨이에 이르는 고전으로 가득한 도서 목록은 그의 지적인 정체성을 제대로 증명했고, 수많은 책 읽는 사진이 연출되었다는 주장을 기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했다.1 하지만 사진은 당연히 연출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사실에 대한 단조로운 기록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여러 해석 가운데] 살아남은 해석의 공통점은 주인공(먼로), 행동(독서), 조명, 어떤 약속으로부터 발광하는 아우라, 아름다움은 실재한다는 납작한 증거뿐이다. 몇몇은 [먼로가 이토록 사진의 연출에 잘 녹아들어 간 것에 대해] 먼로가 포토제닉한 거라고 말한다. 마릴린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해석은 마치 책과 함께 포즈를 취하면 그것을 읽을 수 없기라도 한 듯 애써 사진은 있는 그대로, 즉 먼로의 독서 사실을 보여준다며 마릴린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옹호한다. 하지만 그 사진을 이토록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진위 혹은 진실성의 모호함에 있다.

먼로의 지적인 면을 믿지 않으려는 집요한, 만들어진 불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어쩌다가 그가 멍청하다고, 그것도 멍청함의 아이콘이라고 믿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멍청한 금발이라는 비유는 이제 많은 배우가 원하는 대로 입고 벗을 수 있는 편리한 상투적 장치이다. 숨소리를 적절히 섞어 “웁스!”라고 외쳤던 백금발의 선배들에게 곁눈질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에 마릴린 먼로는 단역, 핀업, 지저분한 가십 거리 등 의지하기 어려운 클리셰의 부분들을 가지고 공적인 정체성을 짜깁기했다. 〈육감적인 미녀(Bombshell)〉(1933)의 진 할로(Jean Harlow)와 전시(戰時)에 대성공을 거둔 베티 그레이블(Betty Grable)은 갈등의 시대를 가로질러 가슴이 풍만한 금발 섹스 심볼의 가도를 닦아 놓았지만 전후의 욕망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였다.

할로와 그레이블의 섹스 어필은 당대의 미묘한 역사적 변화에 대응된다. 위험한 요부인 할로는 대공황 시대의 화려하고 과한 매력이 지닌 성가신 윤리적 딜레마 사이를 비집고 흘러넘쳤다. 그다음 시대에는 그레이블이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적 색채가 가득한 정력적인 활력을 지니고 등장했고, 1941년에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우리 편(good guys)을 응원하는 친근한 아가씨(girl next door)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레이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넘치는 기운으로 등장했을 때, 아이 같이 순진해 보였을지라도 이 두 금발은 딱히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마릴린은 어쩌다 교묘하게 성애화된 백치미를 뒤집어쓰게 된 것일까?

이후에 규정될 먼로의 원형은 연기 커리어의 초창기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초기에 그는 대체로 평면적인 성적 대상으로서만 등장한다. 마릴린이 유유히 등장하면 모두가 그를 쳐다보고, 그가 자신을 소개하면 (이때 이미 억양과 발화 패턴은 삐딱하고, 기울어져 있고, 속임수로 가득하다) 그의 매력을 겨냥한 농담이 오가고, 그는 다시 한가롭게 사라진다. 이때는 그가 지적인지 멍청한지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대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먼로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다.

1952년에 하워드 호크스는 〈몽키 비즈니스(Monkey Business)〉에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케리 그랜트, 프레드 에스테어 없이 홀로 선 진저 로저스와 더불어 마릴린에게 배역을 준다. 과학자 그랜트의 섹시한 비서 역할을 맡은 마릴린은 “이후에 고정된 역할로 굳어질 멍청하고 유치한 금발로서 자신의 섹시함이 초래한 혼란에 대해서 전혀 모른 채 천진하게 있는”2 모습으로 등장한다. 〈몽키 비즈니스〉의 각본은 벤 헥트, 찰스 레더러, I. A. L 다이아몬드가 공동 집필했다. 이후에 찰스 레더러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를, I. A. L. 다이아몬드는 〈뜨거운 것이 좋아〉를, 그리고 아주 정치적인 벤 헥트는 마릴린 먼로의 자서전 『나의 이야기(My Story)』를 대필했다.3 먼로와 헥트가 모두 죽은 1974년에야 출판된 이 책에서 헥트가 그려낸 먼로의 삶은 이후에 쓰인 자서전들의 문화적인 전례가 되었다.

먼로의 공적 자아를 구성하게 될 여러 목소리의 교차점은 〈몽키 비즈니스〉에서 보여준 쉬이 무시당하고 괴짜 같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더구나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먼로의 공적 자아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친구들, 즉 대놓고 남성이며 유대인이고 매우 영리한 인물들도 이러한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 다음 해에 호크스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s)〉라는 한 시대를 정의하는 영화를 감독하게 된다. 이때 멍청한 금발은 본격적인 스타로 부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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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2] 데이브 시세로, 〈『풀잎』을 읽는 마릴린 먼로〉, 1951.

초창기에 마릴린 먼로의 독서 사진은 틀림없이 연출된 것이었다. 1948년에 먼로는 콜롬비아사에 연기자로서 계약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모델로서 연명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머리는 여전히 꿀에 가까운 색의 금발이었고, 마치 시럽과 같이 곱슬곱슬하게 어깨까지 내려왔다. 나이에 적절한 색의 머리카락을 완전히 탈색하기 전, 그러니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의 깃털같이 부드러운 머리칼과 노인의 창백하게 긴 백발을 합친 백금발로 탈바꿈하기 이전이었다. 과산화수소수를 쓸어 바를 때마다 선형성도 함께 타 없어졌다. 그는 겨우 22살이었고, 아직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언덕이 굽이진 풍경의 합판을 뒤로한 그는 단단한 무대에 서있다. “로스앤젤레스 경계”라고 적혀 있는 작은 모형 표지판이 허리께에 놓여있다. 이 젊은 여성은 어딘가 끝자락에 서있다. 반바지를 입은 먼로는 전화번호부를 열어 손에 들고 있지만 그걸 보고 있지는 않다. 앞에 펼쳐진 미지의 도시를 조망하듯 저 멀리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에드워드 크로넨웨스가 촬영한 이 사진의 제목은 ‘로스앤젤레스 경계 근처에서 LA 전화번호부를 읽고 있는 마릴린 먼로’이다. 여기서 ‘도시’와 마찬가지로 ‘읽다’는 느슨한 단어다. 사막 가운데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모퉁이가 그저 연출된 것이듯이 그는 실제로 전화번호부를 읽고 있지 않다. 먼로는 할리우드에 낯설지 않다. 그는 10번 도로가 5번 도로로 이어지는 곳 바로 근처 노마 진(Norma Jeane)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병원에서 태어났다. 아마 그가 들고 있는 전화번호부에 그의 번호가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진에 담긴 픽션 자체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핀업에게 리얼리즘을 바란 적이 있기나 했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를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노골적인 무관심이다.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먼로가 휘트먼의 『풀잎』을 읽는 두 사진이 있다. 각각을 촬영한 사진가는 아마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은 데이브 시세로가 1951년에 〈러브 네스트〉의 광고 지면으로 촬영한 것이다. 여기서 먼로는 잔디밭에 배를 대고 엎드려 팔을 올려 턱을 괴고, 다리는 구부린 채로 꼬고는 발바닥을 하늘에 보여주고 있다. 내가 어릴 때 거실에서 발을 앞뒤로 흔들며 책을 읽던 바로 그 자세였다. (도판 2) 잔디 이파리를 입에 물고 머리는 헝클어진 그는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다. 미간을 거의 찡그리고 있다. 사진 연작 전체는 그 바로 다음에 찍었을 것 같은 사진 또한 포함되어 있다. 그 사진에서 그는 바로 그 잔디밭에서 등을 대고 굴러가 벌러덩 누워서 웃고 있다. 엄지는 여전히 휘트먼 소설을 열어 두었지만 표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책은 몸의 자세를 따라 한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거나 활짝 펴져 있다. 먼로는 단 두 가지 자세만을 취한다. 닫혀 있든지 열려 있든지.

두 번째 사진은 1952년에 존 플레아가 촬영한 것이다. 먼로는 당시에 머물던 베벌리 칼튼에 있다. (도판 3) 푹신한 새틴 누비이불로 덮인 소파에 구름에 눕듯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다. 그 뒤에는 책이 가득한 선반, 사진 액자, 작은 장신구들이 있다. 여기서는 『풀잎』의 제목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책을 얼굴과 같은 각도로 카메라를 향해 들고 있다.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다. 아까 들고 있던 바로 그 책, 그의 소장품이다.

당시에 이 두 사진은 1951년부터 1952년 사이에 그가 출연한 7개의 영화를 홍보하며 널리 퍼졌다. 하지만 먼로의 공적인 이미지에서 월트 휘트먼이 차지하는 역할은 점차 미약해졌다. 추측이 가미된 전기를 쓴 샘 스탁스는 먼로에 대한 허구적인 묘사에서 “월트 휘트먼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종종 휴식을 취할 때 휘트먼을 읽었다. 휘트먼의 길고 자유로운 운문은 그를 달래주는 동시에 자극했다.”4라고 했다. 휘트먼의 글에 있는 환희에 찬 섹슈얼리티의 내용은 간과되고 그 형식의 “리듬”만 남았다. 스탁스가 보기에 먼로는 글의 의미가 아니라 소리를 읽고 있었다.

1950년대 초에 반짝 유명세를 누린 MGM 전속 배우 알린 달(Arlene Dahl)은 먼로와 휘트먼에 대한 일화를 수십 년째 이야기하고 다녔다. 달은 매번 말을 조금씩 바꾸었는데, 파티에 가서 프레드 에스테어(Fred Astaire),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그리고 가끔은 존 F. 케네디와 구석에서 대화를 하다가 월트 휘트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달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마릴린이 ‘휘트먼’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세 신사가 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오! 휘트먼이라니! 저 휘트먼표 초콜릿 정말 좋아해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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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3] 존 플레아, 〈『풀잎』를 읽는 마릴린 먼로〉, 1952.

시인 휘트먼은 초콜릿 휘트먼이 되고, 먼로의 밑천이 드러나고 만다. 달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재미있다는 말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는 먼로의 역할이 휘트먼과 더불어 더욱 강화된다는 뜻이다. 사라 처치웰(Sarah Churchwell)은 그의 저서 『마를린 먼로의 여러 생애(The Many Lives of Marilyn Monroe)』에서 마를린의 멍청함은 대체로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 추론과 오해에서 비롯된 코미디”6였다고 말한다. 처치웰에 의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대표적인 예시는 성적이었다. (먼로는 잘 때 무얼 입을까? - 샤넬 No.5를. 먼로는 사진 촬영할 때 무얼 입었을까? – 라디오를.)

시인 휘트먼과 초콜릿 휘트먼을 헷갈린 것은 재치 있는 말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를 국가적 과잉과 욕망의 상징으로 보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독이 드러난다. 남성들이 미국의 시문학을 논할 때 먼로는 미국산 캔디를 먹는다. 포스트-포스트 전쟁의 또 다른 시대, 곧 9/11과 4조 달러를 쏟아부은 ‘테러와의 전쟁’ 12년 후, 라나 델 레이는 미국적인 것으로 넘쳐나는 〈Tropico〉(2013)를 발표했다. 남성 모델과 라나 델 레이가 직접 맡은 ‘아담’과 ‘이브’는 테크니컬러 에덴동산에서 엘비스, 예수, 존 웨인, 마릴린을 흉내 내는 배우를 만난다.7 라나는 휘트먼을 인용하며 “몸의 전율을 노래한다(I sing the body electric).”8라고 노래하고, 지혜의 나무 아래 그네를 타며 먼로를 인용하여 “다이아몬드가 제일 좋은 친구지.”9라고 노래한다. 라나 델 레이는 월트 휘트먼을 전율하는 몸이 팝 뮤직이라는 핑크 셀로판으로 쌓여있는 휘트먼 초콜릿인 것처럼 포장했다. 시와 상품의 경계가 무너진다. 마릴린은 바로 이 경계가 애초에 존재했는지를 질문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스테레오타입과 밀고 당기는 놀이는 점차 먼로를 갉아먹는 소용돌이가 되었고, 1955년쯤에는 결정적인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 이때 그는 20세기폭스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는 과격하고 전례 없는 행동을 한다. 뉴욕에서 그는 동부의 유대인 좌파 지식인의 번성하는 커뮤니티에 합류한다. 여러 면에서 그는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도피와 부활을 해낼 수 있었던 그의 넉넉한 역량은 지금 보면 무척 용감하고 연금술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고, 다시 돌아가 자신이 성취한 것을 모두 무화하고야 말았다. 각자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그는 성(城)으로 도피했고, 그곳에서도 영역을 정복했다. 할리우드의 정상에서 그는 연극의 무대로 왔다. 마치 인기 많은 농구선수에서 가혹한 극작가가 된 것, 혹은 1면에 실리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하다가 정신분석가의 소파로 돌아간 것이다. 언론, 대중, 제작사는 모두 그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1955년이나 지금이나, 마르크스주의자와 동침하고, 프로이트를 믿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것만큼 미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먼로에 대해 심도 있는 리서치를 진행한 후 집필된 첫 포괄적인 전기는 1956년에 출간된 피트 마틴의 『연기가 마릴린 먼로를 망치고 말 것인가? (Will Acting Spoil Marilyn Monroe?)』10이다. 이 책 전체가 “제대로 해보려는(be serious)” 그의 결심, 즉 미국 문화의 선천적으로 미덥지 않은 열망이 지닌 열린 결말의 모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틴의 책의 제목에서 ‘연기’는 무대 위에서의 연기로 제한되어 지난 9년간 먼로가 출연한 24개의 영화는 단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할 뿐이라고 보았다. 바보에 불과한 먼로는 여러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 영웅의 둔한 형태로서, 아무리 학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그보다는 똑똑하다는 기분을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그가 뉴욕의 지식인들과 새로이 맺은 결속은 단지 성적인 환상을 방해하는 것 이상의 배신이었다. 그는 더 이상 “리틀록 출신의 소녀, 빈민 지역에 살던 아이”11가 아니었다. 이것이야말로 돈 냄새를 맡은 백치 미녀 페르소나의 기반이 된 계급 정체성이자 기원 신화였다. 젠더와 마찬가지로 계급은 체화된 규율의 시스템이었다. 먼로가 대중문화에서 고급문화로 이행한 것을 두고 마틴은 마치 심술 난 아이처럼 버릇이 나빠져버린 것이나 과일 조각이 상해버린 것과 같은 위반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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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4] 이브 아놀드, 〈『율리시스』를 읽는 마릴린 먼로〉, 1955.

지성주의에 대한 공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충격적인 권력의 스펙터클을 연출하며 반대자들을 제거한 매카시즘이 남긴 효과였다. FBI는 먼로가 죽을 때까지 그에 관한 정보를 활발하게 수집했는데, 그중 1955년에 작성한 파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해당인의 관점은 매우 적극적이고 선명하게 좌익이다.”12 “적극적이고 선명하게”라는 말은 민첩함과 확신을 환기한다. 역대 가장 막연한 공적 인물 중 하나에게 주어진 보기 드문 명료한 결단의 힌트가 드러난 것이다. 그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인물로 의식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하게 맞물려 정신질환, 약물 중독, 비극적인 운명과 같은 먼로의 스펙터클이 대중적 의식에 강하게 심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먼로와 아서 밀러의 결혼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만화처럼 특이한 커플로 언론에 다뤄졌다. (“천재와 여신,” “똑똑이가 금발을 차지했다,” “인텔리와 S라인”). 이로써 이 사건의 근본, 즉 이 관계가 로맨틱한 연인관계를 통한 정치적 정체화이자 지적인 자아의 구축한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릴린 먼로가 단지 성적인 욕망으로서만 대중에게 이해된 인물이었다면, 그가 동침하기로 선택한 사람이야말로 그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포스트 프로이트적이면서 전 푸코적인 방식으로, 그 누구도 아닌 먼로야말로 누구를 어떻게 욕망하느냐가 물질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릴린 먼로가 책을 읽는 사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독자와 책의 도상성에 기대고 있다 (도판 4). 1955년, 롱아일랜드의 놀이터에서 진행한 즉흥 촬영에서 이브 아놀드는 마를린이 녹슨 회전 놀이기구에 걸터앉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그는 책의 거의 끝부분을 읽고 있는데, 소설의 후반부는 몰리 블룸의 내재된 의식의 흐름에 이른다. 이 부분은 성적으로 노골적이기로 유명하다. 조이스 연구자, 역사가, 팬, 페미니스트, 영화 이론가는 수십 년 동안 이 사진에 묶여 있었다. “섹슈얼리티와 이에 대한 검열, 논쟁, 문구와 재현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자리를 차지한 두 상징 – 몰리와 마릴린 – 이 예상치 못하게 만나 바닷가 근처에 버려진 놀이터에서 이처럼 솔직하게 찍혔다는 것은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가?13

이 이미지의 “자연스러움”은 대체로 먼로의 지성주의를 밝히기보다 그의 천진난만함을 추정해내는 데에 동원된다. 그는 스스로가 자아낸 의미를 다 이해했을 리가 없으며, 단지 실수로 문화적인 사물의 상징적인 결합을 연출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배경에 어린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있다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누구나 책을 펴놓을 수는 있다. 2014년 타임지 인터뷰에서 조이스 연구자 리처드 브라운(Richard Brown)은 먼로가 『율리시스』를 “실제로 읽었다”(원문에 이탤릭)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진 속에 누군가 책을 읽고 있다면, 아마 책을 읽고 있었을 겁니다.”14

질문은 이제 ‘타인에게 독서가 정확히 어떤 경험인가’라는 공동의 골칫거리로 넘어간다. 독서는 가짜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읽기와 이해는 같은 것일까?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독서의 과정은 몸의 어느 구석에서 일어나는 걸까?
사진에는 단 한 명만 있지만 나는 세 여자를 볼 수 있다. 이브, 마릴린, 몰리 블룸. 모두가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도시와 시골, 픽션과 리얼리티, 이미지와 신체 사이의 경계 공간에 머물러 쾌락의 문서에서 합쳐진다. 나의 제일 친한 친구는 이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침실에 붙여 두었다. 나는 이 사진을 휴대폰의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두고 매일 들여다보곤 했다. 그 사진은 아름다움과 의미가 상호배타적이지 않다고, 판타지를 타협할 필요가 없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몇 가지 역설을 제시한다: 화려하고 매력적이면서 교양 있는. 성인이면서 아이 같은. 여성이자 지성인.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다방면에서 거짓된 약속이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허구를 일구어 온 탓에 그것이 거짓되다고 느낀다. 우리의 불가능성을 다루면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관이나 영점과 이에 수반되는 소망을 함께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마릴린이 우리에게 준 것이기도 하다. 그럴 수 “없음”과 그 반대. 읽는 척하면서 동시에 읽는 것.


  1. 1    크리스티(Christie’s), 『옥션 카탈로그: 마릴린 먼로 개인 소장품』, 뉴욕: 크리스티, 1999. 

  2. 2    사라 처치웰, 『마를린 먼로의 여러 생애』, 뉴욕: 피카도르, 2004, 53. 

  3. 3    마를린 먼로, 벤 헥트, 『나의 이야기(My Story)』, 메릴랜드 랭햄: 테일러 트레이드 출판, 2007. 

  4. 4    샘 스탁스, 『MMii: 마릴린 먼로가 돌아오다(The Return of Marilyn Monroe)』, 뉴욕: 뒤톤, 1991, 75. 

  5. 5    MarilyNo5, “TCM ‘Word of Mouth’ – Marilyn Monroe”. 유튜브 영상, 1min 30sec. 게시일: 2011.09.11. 

  6. 6    처치웰, 위의 책, 50. 

  7. 7    Lana Del Rey. “Tropico”. 유튜브 영상, 27min 8sec. 게시일: 2013.12.6. 

  8. 8    월트 위트먼, 『풀잎』, 뉴욕: 펭귄 출판사, 2005, 116. 

  9. 9    정확히 말하자면 마릴린 먼로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제일 좋은 친구지”라고 노래하지만 라나는 의도적으로 “제일(best)” 대신 “젤(bestest)”라고 잘못 인용하여 소녀, 혹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여성의 억양을 강조한다. 

  10. 10    피트 마틴, 『연기가 마릴린 먼로를 망치고 말 것인가? (Will Acting Spoil Marilyn Monroe?)』, 뉴욕: 더블데이 출판사, 1956. 

  11. 11    이 문구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먼로가 부른 오프닝 곡인 “리틀록 출신의 두 소녀”의 가사이다. 

  12. 12    「FBI, 먼로가 공산주의자와 접촉하는지를 추적하다 (FBI monitored Monroe for Communist links)」, 『가디언 (Guardian)』, 2012.12.29. 재인용: 재클린 로즈(Jaqueline Rose), 『어두운 시절의 여성들(Women in Dark Times)』, 런던: 블룸즈베리, 2015, 117. 

  13. 13    그리젤다 폴록(Griselda Pollock), 「먼로의 몰리: 이브 아놀드가 찍은 율리시스를 읽는 마릴린 먼로의 사진에 대한 세 가지 생각(Monroe’s Molly: Three Reflections on Eve Arnold’s Photograph of Marilyn Monroe Reading Ulysses)」, 『Journal of Visual Culture』, 15.2, 2016, 203-232. 

  14. 14    리처드 콘웨이(Richard Conway), 「블루스데이에 마릴린 먼로가 『율리시스』 를 읽다(On Bloomsday, Marilyn Monroe Reading Joyce’s Ulysses)」 , 『타임』, 2014.6.16. (http://time.com/3809940/marilyn-monroe-james-joyce-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