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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아가 추천하는
Steven Heller, Veronique Vienne, Citizen Designer: Perspectives on Design Responsibilit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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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시민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와 나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런 제목의 책이 나와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의 초판은 내가 대학을 들어가기 1년 전인 2003년에 나왔다. 아마 이 책이 나왔을 즈음의 디자인계 담론 어쩌구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학생활을 한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첫 장을 읽는데 “크… 그래 이거지” 하면서 시작했지만 이 책은 292p 빼곡히 글만 담겨있어 내가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가을은 독서의 계절. 도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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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정이 추천하는
BUFFALO ZINE (버팔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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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ALO ZINE (버팔로 진)은 연 2회, SS/AW 시즌에 맞추어 발행되는 매거진으로 음식, 리빙, 휴가 등 다양한 문화 이슈를 다룹니다. 이 잡지의 흥미로운 점은 각 호가 다루는 주제에 맞추어 수많은 잡지의 외관을 흉내 내는 데에 있습니다. 자유자재로 바뀌는 진의 캐릭터처럼 매 호 인쇄 방식과 판형 역시 달라집니다. 표절, 차용, 패러디 등 모방의 세계를 다루는 No.9와 저와 함께 했으면 더 훌륭했을 No.8을 추천합니다.

“What does it mean to be original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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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이 소개하는
이민경,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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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민경은 스스로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주체가 되어 자신의 신체를 통해 직접 변화를 느끼고, 동시대 여성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그들의 경험을 새로운 사유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 책은 낯익은 논쟁거리들을 재소환한다는 점에서 얼핏 쉬워 보이지만, 페이지마다 집약된 저자와 인터뷰이 여성들의 통찰이 날카롭고 풍부한 각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또한 효력이 다한 추상적 개념틀을 통해 동시대 페미니즘 운동을 재단하는 기성 여성학계의 태도와는 달리, 독보적으로 운동과 언어 사이의 괴리감을 해소시켜준 책이기도 하다. 여성과 여성성, 여성의 다양성, 뷰티 산업과 여성 착취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꾸밈을 통해 온갖 색조와 재질로 변주한 스타일의 다양화는 더 이상 다양성의 확대로 여겨지지도 신선함을 더해주지도 않았다. 인식의 범주가 꾸밈으로 구사한 다양성과 탈코르셋으로 인한 획일성으로부터, 획일적으로 꾸밈을 한 상태와 꾸미지 않은 상태가 만드는 다양성으로 천천히 재편된 것이다. 다양성을 파악하는 기준이 꾸밈의 결과로 만든 스타일 대신 꾸밈 유무로 바뀌고 나니, 꾸민 여성의 얼굴로부터는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고 거꾸로 탈코르셋을 한 여성 간의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 결국 무엇을 ‘다 똑같다’고 느끼는지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통해 차이를 발견하고자 하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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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미우가 소개하는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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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서 이책 저책을 꺼내 접힌 부분을 펴보았습니다. 핸드폰에 페이지만 찍어 놓은 폴더를 켜놓고 쭉 읽어보았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 하고 싶었던 말, 내가 못했던 말, 다양한 색깔로 채색된 장면들이 소복이 쌓여있었습니다. 멋있는 말들이 쓰여있는 책, 그럴싸한 책, 세련된 책, 좋은 책,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을 골랐습니다.

고등학교 때 밤에 울다가 잠에서 깬 일이 있었습니다. 창문 밖으로는 커다란 달이 떠 있었고 달이 반사된 강이 보였습니다. 평소라면 멍하니 그 풍경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졌는데, 불안감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에 읽게 된 책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노란색 무드등을 켜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이 책을 읽습니다. 무엇이 좋았다기보다는 책 속에 나오는 돈가스 덮밥이 자주 생각납니다. 사실 고아같이 서로를 사랑하는 주인공인 두 사람도, 작가의 후기도 빠짐없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일본의 여류 소설가 두 분 중에 미야베 미유키 ‘미미 여사’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대부분 추천입니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은 추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따뜻합니다.)

“참내, 같이 가면 한번에 끝나잖아. 저기봐, 달이 예쁘잖아
유이치는 겨울 하늘의 달을 턱으로 가리켰다.
“치, 둘러대기는”
이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현관을 들어설 때, 달의 흔적을 얼핏 뒤돌아보았다. 아주 밝은 빛을 발하고, 거의 둥글게 차 있었다.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유이치가 말했다.
“역시 관계가 있겠지”
“뭐가?”
“아주 예쁜 달을 본다든가 그러면 요리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친다면서.
생달걀 깨 넣는 메밀국수 같은, 간접적인 거 말고 말이야.”
땡,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내 마음이 순간 진공이 되었다. 걸으면서 나는 말했다.
“더 본질적으로 말이야?”
“그래그래, 인간적으로”
“그야 물론 있지”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만약 이 문답이 ⟨퀴즈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스튜디오라면,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을 것이다.

{후기}
나는 그 옛날부터 오직 한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 소설을 썼고,
그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아질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이 책은, 그 집요한 역사의 기본형입니다.
극복과 성장은 개인의 혼의 기록이며, 희망과 가능성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격렬하게 혹은 차분하게 싸우면서 일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와 아는 사람이 많아, 사실은 그들 모두에게 나의 처녀작… 이 단행본을 바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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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라가 추천하는
루이지 필란델로,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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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안 들려! 무대 위의 연극이다. 관객들한테 안 들릴 만큼 작게 말하자 배우들이 안 들린다고 소리친다. 등장인물은 이는 ‘크게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연극의 등장인물은 자신의 인생과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딱히 별 역할을 갖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 배우들이 연기하기 위해 따라 할 만한 것이 아니며, 어쩐지 따라 하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우리’것이 아닌 ’그들 것이 된 어떤 것’ 이 된다.

이 희극은 자신들이 연극이 되겠다고 등장한 등장인물과 함께 전개된다. 너무나 현실인 것을 예술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현실은 환상이 된다. 그럼 환상이 무엇을 비출 수 있을까? 너무나 현실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비출 수 없다. 날 것을 드러내는 것과 날 것을 재료 삼아 각색과 연출, 배우의 연기를 넣어 연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대화를 나눈다. 이 희극은 1921년에 쓰였으며 연극의 형식을 비트는 동시에 연극의 요소인 각본과 연기, 연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연극을 위한 각본이기에 자세한 묘사는 생략되어 있다. 그것을 연출하는 입장이 되든 관람객의 입장이 되든, 인물과 무대를 만들어내며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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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 기적은 무대에 의해서 이뤄졌습니다. 무대가 불러냈고,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고 태어났단 말입니다. 그것은 더 진실되기 때문에, 여러분보다도 더 무대 위에 존재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담파체 역을 하실 배우는 누구죠? 저 여자가 마담파체입니다. 누가 저 여자를 재창조하더라도, 마담파체 저 여자보다는 진실될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자, 장면을 보자고요!(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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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현이 추천하는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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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사랑, 이별, 에로틱하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관계들, 아직 풀지 못한 숙제. 그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겪어내야 할까?

수전 손택은 내가 태어나기 58년 하고 하루 전에 태어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수전 손탁은 언니가 되고 친구가 된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이 노트는 소울메이트와 주고받는 메신저의 대화창이자 극단적으로 솔직하고 치열하며 지적인 언니와 산책하며 이어가는 이야기 같다. 자신과 타인을 알고자 하는 관심과 분석은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연적인 질문을 유발한다. 투쟁에 가까운 성찰의 결과물인 이 두꺼운 책의 랜덤한 페이지를 펼쳤을 때, 당신은 혼자가 아님을 확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일기는 오로지 자아비판에만 할애되는 것 같다 ㅡ 내 말은, 메타 - 자아비판.
나의 지혜를 나 혼자를 위해서,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려고 포장해 놓은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미련을 버리고 굴레를 끊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398p)

… 나는 언제나 사랑을 나누고 나면 기쁘다 ㅡ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경우가 아니라면(그럴 때는 슬퍼지는데, 섹스가 사랑의 유희 같은 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고 내가 정말로 바라고 그리워하는 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럴 때라도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몸 안에 있을 때 느끼는 것보다는 훨씬 더 살아 있다는 느낌에 젖는다. 나를 만지는 사람이라면 ㅡ 적어도 조금은 ㅡ 누구나 사랑한다. 나를 만지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 내게 무언가를 준다: 바로 나의 몸을.(4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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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마가 추천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스카프 Écharpe』(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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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신작 『스카프』의 완역이다. 원제는 ‘푸른 눈 검은 머리 les yeux bleus cheveux noirs’. … 이 작품은 ‘호모 섹스를 즐기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이 가능한가’라는 대단히 자극적이고 쇼킹한 주제를 다룬 것으로 저널리즘의 화려한 주시 속에 발표되면서 1986년의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옮기고 나서) 23살 즈음에 읽고 매혹되었던 책이다. 그때는 뒤라스의 작품들을 탐독하고 그녀가 감독한 영상작품들도 되는 대로 들춰보았던 때다. 이 책은 나도 구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 있던 책을 학교 앞 인쇄집 … 하여 가진 책. 몇 번을 다시 보아 책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이야기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이 스카프라는 것도 좋고 책 속에서 묘사하는 노르망디 휴양지의 낮과 밤의 감각이 나에게 새로운 바람처럼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글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 ‘스카프’의 은유, 이야기 속 여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여성성과 그와 대조적인 성질,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의 관계, 섹슈얼리티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외롭고 겁이 많은) 게이 남성과 (외롭고 취향 독특한 시스헤테로) 여성의 사랑, 그것도 죽음까지 함께할 사랑을 그리고 있다. 다시 읽어보니 (번역문이 불만이지만) 어떻게 이입하여 그렇게 탐닉했을까 싶을 정도로 촉촉한(aka. 오그라드는) 문장들… (아 나는 촉촉했다네…) 이 책은 사뭇 이해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섬세한 감정선이 남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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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이 추천하는
어슐러 K. 르 귄, 『어둠의 왼손』(197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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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과학소설”이라는 엉성한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걸려든 책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추천을 받기도 해서 집어들었다. 등장하는 ‘게센인’은 생애의 5분의 4 기간 동안 전혀 성적으로 자극되지 않는 완전한 양성병존체로 머물고, 누구나 여성이 되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다는 설정이 특히 책이 처음 나온 1976년에는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자주 거론되는 소설이지만 막상 읽을 때는 각 인물의 성격과 능력에 매료되고, 이들이 서로 맺는 관계의 양상과 소통 방식에 집중하게 되었다. 게다가 꽁꽁 얼어버린 땅에서 펼쳐지는 끊없는 모험과 고생은 인내심의 한계를 자극했지만 ‘고되게’ 즐기는 매력을 느끼게 했다. 처음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세계의 성의 문제가 그 자체로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 읽고보니 “다른 세계의 남성들처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남성도 없다”는 게센인에 대한 설정이 덕분에 인물 간의 역동이나 설산에서의 어드벤처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인물을 특정한 성별로 그리거나 성역할을 수행하는 데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 그것을 소화하고 떠올리는 수고를 하는 대신 차디찬 눈보라와 지혜로운 존재들을, 서로 다른 존재가 신뢰 관계에 도달하거나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순수한 마음 같은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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