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권세정, 박보마, 백수현,
안초롱, 양윤화, 이주연,
장서영, 최보련, 박지원,
한지형
일시.
2020.12.31 ~ 2021.1.10
기획.
유지원
디자인.
신인아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Girls in Quarantine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가 재배치한 일상 속 경험에 주목하고, 여성 창작자와 함께 새로이 부상한 제한조건을 운용하는 실천을 모색하고자 한다. 인간의 몸이 곧 바이러스의 숙주로 재발견되자, 대면이 곧 가해, 비대면이 곧 케어로 전환된 일상이 이어졌다. 얼굴과 살을 맞대는 서비스 업종이 휴지기에 들어가고, 타인의 손길이 필요한 몸들이 기약 없는 동면을 취하는 사이 화상회의 소프트웨어의 주식이 반등하고 서버가 폭주했다.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마스크, 카메라, 스크린, 마이크, 스피커, 소프트웨어 등 장치로 매개된 소통은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비대면 혹은 매개-대면이 지배적인 교환 양식으로 부상하면서 이에 걸맞는 매너와 습관, 규칙과 반칙이 설정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공적-외부 공간과 사적-내부 공간 사이의 경계가 돌연 선명해지고, 전자가 후자로 흡입된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좁아지는 한편 트래픽은 폭등한다.
매개된 소통은 물리적, 신체적 한계를 괄호 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는 한편 우리를 더 촘촘한 고립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사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을 잇는 장치는 여성을 자신의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하는 동시에 가장 내밀한 공간까지 침범할 여지를 지닌다. 카메라와 스크린을 경유한 업무와 만남은 자기 이미지의 오퍼시티를 조정할 기회를 주는 한편 새로운 종류의 압박을 창안한다. 이처럼 소통 매체는 순수하게 경험을 옮겨놓기보다 정보와 친밀감이 교환되는 장을 재구성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련의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대대적인 전환의 변곡점이라면, 어떤 연결이 강화되거나 약화되는지, 어떤 창이 열리거나 닫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Girls in Quarantine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코로나19의 출현 이전부터 여성에게 표현의 수단이자 억압과 위협의 장치로 작동하는 일련의 매체를 운용해왔던 여성 작가들과 더불어 확장하고자 했다.
Girls in Quarantine은 스크리닝과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스크리닝’은 관계를 매개하는 장치를 탐구하기 위해 권세정, 백수현, 한지원, 장서영, 최보련의 작품을 제안한다. 특정한 입장에 서게 하거나 관계의 모순을 폭로하는 카메라, 타인 혹은 자신을 확인하는 창이자 이미지를 가두어 고립하는 스크린 등 팬데믹 이전에 제작된 작품은 일련의 매개체가 관계의 양식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프로젝트’는 권세정, 박보마, 안초롱, 양윤화, 이주연, 한지형에게 키워드 – ‘Isolation(격리)’과 ‘Intimacy(친밀함)’ – 를 제시하고, 이를 이어받을 단어와 함께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신작을 의뢰한 결과물이다. 여섯 명의 작가는 재구성된 리얼리티를 탐구하며, 기존의 연결이 약화되면서 겪는 고립의 양태들을 살펴보는 한편 확장된 친밀감을 탐색한다.
권세정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장마를 맞이하고, 꿉꿉한 작업실 환경에서 벌어지는 점진적 부식과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나아가 작업실 내에 일종의 비바리움을 만들어 통제된 환경에서 벌어지는 유기체와 비유기체의 미세한 얽힘을 관찰한다. 박보마는 위용을 자랑하며 빛나는 대형 빌딩 로비에 들어가 껍데기뿐인 것들 – 가짜 돈, 가짜 대리석 기둥, 스티커, 리본 등 – 을 늘어놓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외부인의 환대와 통제를 동시에 감행하는 로비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태도는 웹페이지에 창을 만들고 사운드와 이미지로 채워넣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안초롱은 2020년 개최하였던 개인전 《Natural Gene》, 사진집 『Natural Gene』에 선보였던 사진을 웹 공간에 전시한다. 방문자에게 전체적인 그림을 제공하기보다 접속 기기에 따라 다른 해상도와 스케일로 이미지를 마주하여 하염없이 배회하도록 하는 페이지를 통해 실물 전시만큼이나 물리적인 경험을 구현한다. 양윤화는 강아지 두 마리와 인간 퍼포머 두 명이 각본을 실연하는 동안 촬영자 세 명이 이들을 피해서 촬영하도록 연출했다. 강아지와 인간을 피해 벽, 창, 천장을 훑는 세 카메라의 시선은 볼 수 없지만 있다고 믿는 마음과 함께하지만 마주하지 않는 순간을 공백에 끼워 넣는다. 이주연은 팬데믹 이전부터 고립을 경험하는 이들을 다루며 개인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외로움을 다루고자 했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모큐멘터리 필름과 특수청소업체의 직원과 고객이 밤거리를 업어 점프하는 퍼포먼스 필름을 초연하고, 드로잉과 소설로 작품의 주요 심상을 확장한다. 한지형은 동시에 여러 양태 - 신체적/비신체적, 인간적/동물적/비유기체적, 단수/다수적 – 를 지니는 존재를 설정한다. 빠르고 매끄럽게 이동하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 권태롭고 나태한 아무개는 오히려 바로 그러한 권태로움 덕분에 사물 존재를 발견하고, 미끄러운 표면과 마찰한다.
Girls in Quarantine 은 웹기반 리서치 프로젝트 (Not) Your Typical Narcissist (2019~)의 연장선상에 있다.